종교 갈등만이 전부가 아니다[임용한의 전쟁사]〈289〉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3일 23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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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중동 정세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가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종교 지도자인 동시에 정복 군주였다. 아라비아 부족들의 힘을 결집해 왕성한 정복 활동을 펼쳤다. 무함마드의 두 아들은 일찍 죽었고, 그는 후계 방식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죽었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회의 끝에 후계자를 선출하고 그에게 칼리프란 명칭을 붙였다.

칼리프 자리를 두고 내전이 발생했다. 3대 칼리프 우스만이 살해되자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던 알리와 우스만의 집안인 우마이야가(家)가 대립했다. 이때 알리를 추종하던 집단은 무함마드의 후손만이 칼리프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시아파의 시초이다. 반면 우마이야가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능력을 지닌 자격자가 칼리프로 선출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이 수니파이다.

680년 알리는 소수의 추종자를 데리고 여행을 떠났다가 우마이야 병사들의 습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이 공격에 카와지리파가 가담했다. 이들은 알리 추종자였다가 알리가 우마이야가와 휴전을 맺은 것에 분노해서 탈퇴했던 집단이었다. 이 사건은 시아파의 숙명을 함축한다. 시아파는 무슬림 사회에서 소수파로 탄압받는다. 현재도 약 16%만이 시아파이며, 수니파가 83%를 차지한다.

소수자의 숙명인지 시아파 내에서는 카와지리파 같은 극단적인 강경파가 득세하거나 활약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극단적이고 극적이었던 종파가 ‘어새신’으로 알려진 암살자 집단 이스마일파였다. 이 전설적인 집단은 이란을 지나 아프가니스탄까지 갔다가 마지막에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까지 쫓겨 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시아파라고 다 강경파는 아니지만 소수파라는 사정, 투쟁의 역사, 편견이 겹치면서 오늘날에도 강성 이미지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물론 종교가 모든 현상의 원인은 아니다. 현재 시아파의 종주국이 이란인데, 이란이 수니파 지역과 척을 진 것은 이슬람이 탄생하기도 전, 지금으로부터 7000년 전 수메르 문명 시절부터였다. 말 그대로 문명이 탄생하던 시기부터 라이벌이었다. 여기에 종교와 국제 정세, 이데올로기가 얽히고 뒤엉켰다. 이래서 중동 문제가 쉽지 않다.

#중동 정세#수니파#시아파#종교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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