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의 지역구 의원들이 내걸었던 공약 10건 중 3건은 너무 추상적이거나, 구체적 계획이 없어 검증조차 할 수 없는 빌 공 자 ‘공약(空約)’이었다. ‘북핵 문제 해결’ ‘전 정부 실패 정책 정상화’ 식으로 지역구 의원의 능력만으로 해결이 불가능하거나, 실현 여부를 확인하는 게 무의미한 공약들이다. 구체적 내용이 있는 나머지 공약 중에서도 실제 이행된 건 18.5%에 불과했다. 표를 얻기 위해 타당성을 따지지 않고 무분별하게 쏟아낸 약속이 훨씬 많다는 의미다. 2020년 총선 때 지역구 의원 238명(의원직 상실 15명 제외)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냈던 1만4119개 공약을 동아일보와 한국정치학회가 전수 조사한 결과다.
수십 년째 가동하지 않아 흉물로 변한 수도권의 한 하수처리장 처리는 4년마다 등장하는 이 지역의 단골 총선 공약이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주민 숙원 사업’이라며 철거·이전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어 지역민들은 체념한 상태다. 전국적으로 지역구 의원 27명이 공약한 트램 도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진척되고 있는 것은 6, 7건에 불과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예상 편익에 비해 투입 비용이 과도해 사업이 벽에 부딪혀 있다. 그런데도 트램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지역 의원들은 내년 총선에도 관련 공약을 다시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철도 건설, 도로 연결·확장 등 교통 관련 공약만 10여 개를 내걸었는데 이 중 첫발이라도 뗀 사업은 절반에 불과했다. 수백억 원의 비용이 없어 지방자치단체가 이미 백지화한 지역 스포츠센터, 문화센터를 세우겠다는 공약을 내놨다가 오리발을 내민 의원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올해 중앙정부의 세수 부족으로 내년엔 지방교부금까지 대폭 줄어들 예정이어서 지역 현안에 대한 지역구 의원의 예산 확보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르고 보기’ 공약이 총선 때마다 남발되는 건 공약을 만들 때 타당성을 따지지 않을 뿐 아니라, 사후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선진국에선 각 정당이 소속 의원의 공약 이행 여부를 점검한 체크리스트를 매년 만들고, 시민단체들은 지역 의원의 공약 수행 성적을 철저히 평가한다. 건성으로 공약만 던져 놓은 채 나 몰라라 하는 ‘떴다방 정치’가 22대 국회에선 재연되지 않도록 우리 국민도 눈을 더 부릅뜨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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