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내년 총선 때부터 투표용지 개표 때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세는 수(手)작업을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현재는 전체 투표용지를 분류기로 돌려서 같은 후보, 같은 정당을 찍은 것끼리 한 덩어리로 묶고, 그 묶음이 몇 표인지를 계수기로 센다. 기계를 써서 전산처리하는 두 가지 작업 중간 단계에 분류 오류는 없는지, 날인된 투표용지가 맞는지 눈으로 손으로 전수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사전투표 용지에 QR코드 대신 바코드를 쓰고, 해킹 방지를 위해 인가된 보안 USB만을 쓰는 방안도 함께 준비되고 있다.
이번 검토는 국민의힘 요구에 따른 것이다. 2020년 총선 때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들이 당일 투표에선 앞섰다가 나중에 사전투표가 개표되면서 승패가 뒤집어진 사례가 속출하자 보수층 일각에서 투·개표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11개 지역구에서 경쟁 후보끼리 사전투표의 관내·관외 득표 비율이 유사한 현상이 있긴 했지만 수사와 소송을 통해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인쇄 오류 등 투표용지의 제작과 사후 보관에서 일부 잘못이 드러난 건 사실이다. 중앙선관위가 이듬해 이른바 ‘소쿠리 투표’ 소동을 겪으면서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기계·전산 개표에 수작업을 추가하는 것은 자동화라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인력도 더 필요하고, 개표 시간도 늘어나면서 선거 당일 늦은 밤까지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선관위와 우리 사회가 쌓은 불신의 비용을 치르는 셈이다. 국회 입법이 필요하진 않지만 민주당은 “선거 신뢰성을 훼손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주요국 가운데 독일 대만 등이 수작업으로 개표하고, 미국 일본 등에선 기계 검표가 원칙이다. 사회 통합과 의혹 차단이라는 더 큰 대의를 위해 ‘부분 수개표’라는 역진(逆進)을 검토할 수는 있다. 불신의 비용을 치르는 것이지만 신뢰 회복을 위한 투자로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몇 년째 부정선거 논란이 이어지면서 옛 방식인 수개표까지 다시 채택해야 하는 상황이 개운치는 않다. 과도하게 의혹을 부추긴 쪽은 자제하고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선관위는 신뢰 회복에 차질 없어야 한다. 논란 없는 선거 관리는 곧 사회적 갈등 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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