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에는 높이 52m의 ‘발견 기념비’란 명소가 있다. ‘해양왕’ 엔리케 왕자 사후 500년을 기념해 세워진 조형물이다.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탐험가 페르디난드 마젤란 등 여러 인물이 조각돼 있다. 이들은 수많은 실패와 어려움을 이겨내고 희망봉 발견 등의 업적을 세우며 ‘대항해 시대’를 열었다. 바다 끝에 절벽이 있다거나 괴물이 산다는 유럽 중세 시대의 미신도 깨버렸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가져올 새 시대에 대비하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면서 엔리케 왕자의 꿈이 새삼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네이션스는 2014년 대한민국이 주도해 영국, 에스토니아 등과 함께 만든 국제협의체다. 처음에는 5개국이 참여하는 ‘디지털5’로 출범했으나 지금은 회원국이 10개인 ‘디지털네이션스’로 성장했다.
추가로 싱가포르, 호주 등 여러 나라가 가입을 희망하는 상황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처럼 어느새 전 세계가 선망하는 디지털 리더 국가들의 협의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엔, OECD, 세계은행 등의 평가에서 수차례 세계 1위를 기록한 디지털 정부 선도국이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의 경험과 사례를 배우고 있다. 디지털네이션스에서도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다. 2016년과 지난해 의장국을 맡아 장관회의를 주최했는데, 의장국을 두 번 맡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영국뿐이다.
리스본에서 열린 올해 회의에선 ‘더 나은 데이터, 더 나은 사회’라는 주제로 회원국들과 지혜를 모았다. 그 결과 공정하고 윤리적인 데이터 활용,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데이터 접근성 보장, 장벽 없는 데이터 공유와 협업 등의 내용을 담은 선언문을 발표했다. 우리 정부가 지향하는 ‘디지털 플랫폼 정부’의 가치에 모든 회원국이 공감하는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물론 대항해시대는 식민지 등 어두운 단면도 남겼다. 우리도 이를 교훈 삼아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디지털 전환의 결과물을 선도국들이 독점해서는 안 된다. 후발주자들을 도와주고 이끌어 세계가 함께 앞으로 가야 한다.
대한민국은 정부24, 홈택스, 국민비서, 공공마이데이터 등 우수한 디지털정부 서비스를 세계 각국에 확산시키고 있다. 앞으로 국가 간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해 더 노력할 것이다.
리스본 현지에서 만난 각국 디지털 관련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의 역량과 헌신에 찬사를 표했다. 그 찬사를 그동안 디지털 대한민국을 위해 노력한 전문가, 기관, 기업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전해드리고 싶다.
디지털네이션스 주도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밝히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가 대한민국 앞에 있다. 대항해 시대를 개척한 엔리케 왕자가 여전히 세계인에게 기억되듯, 훗날 인류 역사에 디지털 전환 시대를 개척한 대한민국으로 기억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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