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수고비 달라는데, 내 어디 그런 큰 재물이 있나. 정정(整整)이란 가기가 하나 있는데, 쟁반 나르고 밥 푸는 잔시중은 들 수 있지. 내가 즐기던 가무는 적막해졌고, 이제 남은 건 피리 몇 가닥. 정정이 이런 사정을 살펴, 마나님께 잘 지내시라 인사 고하네. (醫者索酬勞, 那得許多錢物. 只有一個整整, 也盒盤盛得. 下官歌舞轉凄惶, 剩得幾枝笛. 觀着這般火色, 告媽媽將息.)
―‘호사근(好事近)’·신기질(辛棄疾·1140∼1207)
시의 소재치고는 특이한 에피소드다. 아내의 병 치료차 의사를 부른 시인은 치료비를 감당치 못한다면서 집안의 가기를 대가로 치를 셈이다. 이게 혹여 농담이 아닐까 싶었는데, 눈치 빠른 가기가 ‘이런 사정을 살펴, 마나님께 잘 지내시라 인사 고하는’ 지경이 되었으니 물은 이미 엎질러진 듯하다. 신기질, 북송 고토(故土) 수복을 주장하다 주화파와의 갈등 끝에 관직에서 밀려났고 우국의 울분을 토로한 작품을 많이 남겨 애국 시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낙향 후에는 전원생활의 여유를 담은 노래도 다량 지었고 한때 호화 별장을 지었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시인이 실제 이토록 궁핍하게 살았는지는 의문이다. ‘내가 즐기던 가무는 적막해졌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형편이 어려워졌다기보다 가무에 대한 흥취가 사그라지면서 내친김에 가기를 내보내려 하지 않았을까.
가기는 혹 가기(歌伎)라고도 표기하는 데서 보듯 기녀(妓女)라기보다는 가무에 능숙한 예인(藝人)의 의미가 강하다. 가기는 송대에 크게 성황을 이루어 사대부들은 가기 두는 걸 관행처럼 여겼다. 구양수, 소식 등도 집안에 열 명 정도를 두었다 하고 신기질의 경우 작품에 이름이 등장하는 가기만 일곱 명이나 된다. ‘호사근’은 곡조명, 내용과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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