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내년 예산을 심사하고 있는 여야가 총선을 의식해 자기 당에 유리한 쪽으로 정부 예산안을 난도질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청년, 노인층 예산을 집중적으로 늘리는 ‘40대 증액사업’을 추진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짠 사업예산을 뭉텅이로 깎아내는 대신 자신들이 요구해온 사업 예산을 늘리거나 되살리고 있다. 여야의 증액 경쟁에 떠밀려 결국 정부의 건전재정 기조가 흔들릴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국민의힘은 대학생 ‘천원의 아침밥’ 사업 확대,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 등 청년 표를 공략하기 위한 방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건강보험에서 지원하는 노인 임플란트 수를 2개에서 4개로 늘리고, 무릎관절 수술 지원자를 확대하는 ‘어르신 공약’도 쏟아냈다. 민주당은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 선도 연구센터 지원예산 등을 1조 원 이상 깎고, 정부가 전액 삭감한 지역화폐 예산 7053억 원을 되살렸다. 또 대폭 줄었던 새만금 관련 신공항·고속도로·항만·철도 등 개발예산은 3700억 원 가까이 증액했다.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여야가 예산을 확대하면서 예산안 예비심사를 마친 9개 상임위 증액 규모만 벌써 9조 원에 육박한다. 17개 상임위 증액분을 합하면 15조 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년 정부 예산안 638조7000억 원의 2.3%나 되는 금액이다. 전부 현실화한다면 내년 예산이 올해보다 5% 넘게 증가해 긴축예산이란 말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국회의 예산 증액, 세목 신설은 기획재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요구한다고 모두 반영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야가 각자 필요한 예산을 주고받기 식으로 거래하거나, 짬짜미로 타협할 경우 정부가 버티기 어려워진다. 여야는 정부가 반대하는데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건너뛰고 11조 원짜리 대구∼광주 간 달빛고속철도를 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만 60조 원의 세수 펑크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선심성 예산 경쟁은 불필요한 곳에 돈이 흘러가고, 필요한 곳에는 돈을 못 쓰게 되는 비효율을 부르게 된다.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여야가 동의한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등은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오직 표만을 목표로 한 무분별한 예산 증액으로 국민 혈세가 축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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