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를 일시 금지하는 긴급명령은 시장에 균형을 회복시켜 줄 겁니다.”(2008년 9월 19일)
“위원회가 공매도 금지를 다시 시행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공매도 금지의) 비용이 이익보다 더 큰 것으로 보입니다.”(2008년 12월 31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크리스토퍼 콕스 위원장은 공매도 금지를 발표하면서 해당 조치가 주식시장에 균형을 가져올 거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뒤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콕스 위원장은 공매도 금지 결정을 후회하는 발언을 남겼다. 공매도 금지가 주가 부양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유동성 확보에 지장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사실 주식 공매도는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속성상 대부분의 개인 투자자들에게 절대 환영받을 수 없는 존재다. 누군가 돈을 잃고 피눈물을 흘릴 때 웃는 투자 방식이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선진 자본시장에서 공매도가 보편적인 투자 방식으로 인정받는 상황에서 이를 무조건 죄악시할 순 없는 노릇이다.
사실 국내외 주요 연구들은 공매도와 주가 하락의 상관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2006년 1월 2일부터 국내에서 공매도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날인 2008년 9월 30일까지 678일간 215개 종목의 일별 공매도 및 주가를 분석한 논문(‘주가와 공매도 간 인과관계에 관한 실증 연구’)에 따르면 “증시 전체나 개별 종목 차원 모두에서 공매도로 인한 주가 변화의 증거는 없거나 미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공매도가 주가에 영향을 미치기보다 주가 변화가 공매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논문 저자들은 “실증 분석 결과는 2008년 전격적으로 취해진 전면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한 논리적 반박의 근거를 제공할 수 있다”고 썼다.
해외 사례 연구도 비슷한 맥락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1월∼2009년 6월 공매도 금지 혹은 제한 조치를 시행한 30개국 1만6491개 종목의 일일 데이터를 분석한 해외 저명 학술지 논문(‘Short-Selling Bans Around the World: Evidence from the 2007∼09 Crisis’)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가 시가총액이 작고 변동성이 높은 주식 유동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약세장에서 가격 발견을 늦추며 △미국 금융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종목에서 주가를 부양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 비해 시가총액이 훨씬 작고 주가 변동성이 높은 한국 등 이머징 시장에서 공매도 금지의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16일 ‘공매도 제도 개선 방향’을 발표하면서 공매도 금지 기간을 연장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시장 혼란을 키울 수 있는 무차입 공매도 등 불법행위를 엄단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증권가에선 공매도 금지 연장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해 한국 증시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외국인 투자자 이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수년 전 한국의 중소형주 공매도 금지를 이유로 관련 평가를 ‘++’에서 ‘+’로 내렸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지 않고, 증시 유동성을 확보하는 공매도의 순기능은 살릴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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