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 여부에 관심을 모았던 한중 정상회담이 끝내 불발됐다. 정부가 APEC 폐회 전날까지도 “논의 중”이라며 일정을 조율했으나 중국 정부가 답을 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은 회의장에서 3분가량 선 채로 원칙적인 덕담을 나누는 것에 그쳤다.
중국은 APEC 기간에 미국, 일본과는 정상회담을 개최해 결과적으로 역내 주요 국가 중 한국만 쏙 빼놓은 모양새가 됐다. 브루나이, 피지, 페루, 멕시코와도 정상회담을 했지만 한국은 명단에 없었다. 양국 관계 개선의 동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해석 속에 연말 개최가 점쳐지던 한중일 정상회의도 지연되는 분위기다. 3국 정상회의로 물꼬를 튼 뒤 시 주석의 방한과 양국 정상회담을 연쇄적으로 성사시키려던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갈등을 지속해 온 한중 관계는 정부가 하반기 대중 외교에 공들이기 시작하면서 회복 기대감이 높아졌던 게 사실이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3국 협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는 중국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여론도 높아졌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을 계기로 시 주석과 면담하고, 시 주석이 먼저 “방한을 진지하게 검토하겠다”고 운을 띄우기도 했다. 양국 고위급 회담이 이어지며 탄력받던 협력 논의가 다시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는 우려스럽다.
중국이 대외적으로는 미중 간 전략 경쟁, 내부적으로는 경기침체 대응 등으로 외교 여력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일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한반도 문제를 뒷전으로 미뤄둘 수 있는 상황 또한 아니다. 북한은 러시아의 기술적 지원을 받아 늦어도 이달 말 안에 정찰위성 재발사에 나설 것이란 게 군 당국의 관측이다. 광물 공급망 확보를 비롯한 경제 현안들도 가볍지 않다.
중국은 이런 양국 문제들을 놓고 실질적인 성과를 도출해낼 수 있도록 한국과 정상회담을 비롯한 협력 논의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한국 또한 양국이 실리와 명분을 함께 챙길 의제를 정교화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달 말 추진되는 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등을 계기로 협의의 공통분모들을 찾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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