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정부 선진국’을 자처해온 한국에서 국가 행정전산망이 먹통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선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된 지난 금요일 주민등록등본 등의 서류가 필요한 전세계약, 금융거래가 올 스톱 되면서 큰 혼란이 빚어졌다. 사태 발생 후에도 담당 부처가 원인을 빠르게 찾아내 해결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디지털 위기 대응 체계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는 17일 오전 전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민원을 처리할 때 사용하는 ‘새올’ 시스템의 인증관리 체계에 장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이어 일반인들이 온라인으로 민원서류를 발급받는 ‘정부24’ 서비스로 장애가 번졌다. 이날 관공서 업무시간이 끝날 때까지 국민들은 장애와 관련한 안내문자도 받지 못했다. 결국 정부24는 토요일 오전, 새올은 같은 날 오후까지 고장이 계속됐다. 2002년 11월 전자정부 시스템 출범 후 이렇게 장시간 행정전산망이 마비된 건 처음이다.
더 큰 문제는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산하 국가정보지원관리단이 조속한 원인 규명, 신속한 망 복구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어제가 돼서야 행안부는 새올 네트워크 장비의 고장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새올 장비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곧 복구될 것이라던 사고 직후 설명과 달라져 오락가락 해명이란 비판이 나왔다. 2000만 명이 가입한 시스템에 탈이 났는데 정상화에 56시간이나 걸린 늑장 대처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올해 3월 법원 전산시스템 마비, 6월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먹통 등 정부가 관리하는 전산망에서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국무총리와 행안부 장관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로 민원서류를 제때 발급받지 못해 계약 마감시한 등을 놓친 시민들이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천재지변같이 위급한 상황이 아닌데도 정부 전산망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진 건 ‘디지털 기술 강국’의 위상을 깎아내린 참사다. 민간 기업들의 네트워크 사고와 달리 국가 전산망 이상은 국가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 전산망이 완전히 정상화된 뒤라도 관리체계의 허점은 무엇인지, 외부의 ‘사이버 공격’은 없었는지 원점에서부터 낱낱이 밝혀내 재발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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