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기 말에서 11세기 초, 거란이 고려를 집요하게 침공했다. 1018년 마지막 침공 때, 거란의 맹장 소배압은 기필코 고려를 굴복시키겠다는 마음에 과감한 시도를 한다. 기병의 기동력과 현지 조달 능력을 무기로 거점도시, 중간 보급기지 확보를 생략하고 단숨에 개경까지 달려 단기 승부를 노린다.
소배압의 모험은 거의 성공할 뻔했지만, 개경 사수를 결심한 현종의 더 대담한 결정과 고려군의 맹렬한 추격 덕에 실패하고 만다. 개경 입성에 실패하는 바람에 거란군은 굶주림과 피로를 해소할 기회를 놓쳤다. 지치고 낙담한 몸으로 회군하던 거란군은 귀주성 앞 벌판에서 강감찬의 고려군을 만나 전멸한다. 이것이 귀주대첩이다.
거란의 진짜 목표는 송나라 정복이었다. 전군을 동원해 송을 침공했을 때 배후에 있는 고려나 여진이 거란을 치면 양면협공에 걸린다. 거란은 먼저 여진과 고려를 정복해 이런 위험을 사전에 제거하려고 했던 것이다.
600여 년 후에 청이 조선을 침공했다. 병자호란이다. 이 침공의 이유도 거란과 똑같았다. 중국의 왕조가 송에서 명으로 바뀌어 있었을 뿐이다. 전술적 목적은 좀 다르지만, 선봉 부대가 기병으로 전격전을 시도한 것도 유사하다. 하지만 척화파는 청이 조선을 침공하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했다. 청이 설명해 줘도 믿지 않았다. 청의 군대가 밀어닥쳐도 허세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청 태종이 직접 왔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청 태종이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오겠는가. 이 전쟁은 변방의 장수가 감정적인 이유로 침공한 것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늘 강조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사람들이 거란전쟁의 교훈은 왜 망각했을까. 이념과 사상을 먼저 세우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았기 때문이다. 역사를 배운다기보다는 역사를 이용한다. 목적에 맞춰 현실을 왜곡하고,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외쳤다. 그 결과가 삼전도의 굴욕이다. 다시 400년이 지났다. 비슷한 일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역사는 돌고 도는 걸까. 인간의 지성에 한계가 명확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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