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실존적 상황이면 작은 것에 집착하게 된다. 인도 작가 아룬다티 로이의 소설 ‘작은 것들의 신’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남자는 불가촉천민이고 여자는 가촉민이다.
불가촉천민은 오염된 존재다. 그래서 가촉민이 만지는 것을 만질 수도 없고, 말할 때는 더러운 입김이 나가지 않도록 입을 가려야 한다. 다른 사람이 밟지 않도록 자신의 발자국을 빗자루로 쓸며 뒷걸음질 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니 불가촉천민 벨루타와 가촉민 암무의 사랑이 용납될 리가 없다. 누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지가 이미 정해진 카스트제도에서 그들의 미래는 없다. 가족도 그들의 편이 아니다. 아들의 사랑을 주인집에 알리는 것은 아버지다.
두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작은 것들에 집착한다. 나뭇잎에서 미끄러지는 어설픈 애벌레, 뒤집혀서 허우적대는 딱정벌레,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는 사마귀 등처럼 작은 것들. 그들은 특히 자기 몸을 쓰레기로 위장하는 작은 거미에 집착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이 마늘껍질을 선물하자, 거미는 그것을 거절하고 아예 쓰레기 밖으로 나와 며칠 동안 위험하게 알몸으로 지낸다. 나름의 자존심인지 모른다.
그들이 거미에 집착하는 것은 거미에게서 자신들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와 운명을 거미와 결부시키며, 거미가 하루하루를 어떻게 견뎌내는지 살핀다. 거미의 유약함에 애가 탄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 다르게 거미는 실제로는 유약하지 않다. 새끼를 낳아 “다음 세대의 아버지”가 되고 자연사한다. 그들은 어떠한가. 남자는 경찰한테 맞아 죽고 여자는 집에서 쫓겨나 스스로 죽는다. 유약하고 안쓰러운 존재는 거미가 아니라 그들이다.
인도 남부의 케랄라주를 배경으로 하는 ‘작은 것들의 신’은 국가, 종교, 이념, 카스트 같은 것들에 짓밟히고 눌리고 깨진 존재들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작가의 눈을 보여준다. 그에게 작가의 책무란 작고 연약한 자들의 편에 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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