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홀로코스트 연구자인 유대인 데버라 립스탯 교수는 영국의 데이비드 어빙 교수로부터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다. 어빙은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면서,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며 히틀러의 명예 회복을 위해 활발한 저술과 강연 활동을 해왔다. 이런 그를 그녀는 ‘역사를 왜곡하는 히틀러 광신도’라고 비난했고, 어빙은 미국에 사는 그녀를 일부러 영국 법정에 세운다. 영국은 미국과 달리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한 피고가 자신의 행동이 명예훼손이 아니란 걸 입증해야 한다. 립스탯 교수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증인석에 세우면 간단히 끝날 문제라고 주장하지만, 변호인단은 어빙이 생존자들을 희롱하고 모욕한 전력을 잘 알기에 복잡하고 힘든 길을 택한다. 어빙이 20년 넘게 써 온 일기와 그의 모든 저서, 강연을 샅샅이 조사한다.
3년 후 재판이 열린다. 립스탯 측은 어빙이 인종차별주의자에 히틀러 추종자라고 강조하지만, 판사는 “어빙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홀로코스트를 부정한 것은 그가 진실로 그렇게 믿어서일 수도 있다”며 신중해진다. 변호인단은 어빙이 무지해서가 아니라 고의로 역사를 왜곡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들은 어빙이 10%의 진실에 90%의 거짓을 덮어씌워 왜곡한 사실들을 찾아낸다. 어빙은 단순한 실수였다고 항변하지만, 변호인단은 그가 오직 히틀러를 두둔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행한 왜곡이란 걸 밝힌다. 마침내 립스탯은 비난받아 마땅한 어빙의 행위를 비난했기에 명예훼손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누군가의 범법 행위나 부도덕함을 공개하면 그것이 사실이어도 명예훼손에 걸린다. 공익을 위한 폭로도 항상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나라를 뒤흔드는 가짜뉴스를 퍼뜨린 국회의원은 면책특권을 방패 삼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 무책임한 정치인에게 유리한 사회다.
실화를 다룬 영화이지만 보는 내내 가슴 졸였다. 혹시라도 판사가 어빙과 같은 신념의 소유자라면? 그래서 상식을 뒤엎는 판결을 내린다면? 영국처럼 우리나라도 재판부가 법정에 들어설 때 모두 일어나서 고개 숙여 인사한다. 판사들은 사람들이 왜 깍듯이 예를 갖춘다고 생각할까? 자신이 판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흘린 피땀에 대한 존중이라고 여길까? 국민들은 사법부가 행할 공정한 재판에 대한 존경을 미리 표하는 것이다. 이걸 착각하는 판사들이 있는지 요즘 이해가 안 되는 판결들이 늘어난다. 판사의 머릿속이 궁금해진다. 진실로 그렇게 믿어서 그런 판단을 한 걸까, 아님 개인의 정치적 노선 때문에 진실을 외면한 걸까? 전자라면 무지한 거고, 후자라면 사악한 거다. 가짜뉴스 생산자들과 다를 바 없다. 인공지능(AI)이 더 공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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