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기계산업단지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지난달 파산해 6개 층 건물의 모든 불이 꺼져 있다. 이를 지켜보는 산단의 부품업체들은 남 일이 아니라며 착잡한 심경을 감추지 못한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이자 비용 증가에 죽지 못해 버티고 있다고 호소한다. 당장 올해 안에 직원 절반을 내보내겠다는 업체도 있고, 공장을 돌릴수록 적자만 쌓여 사업을 접을 시점을 재는 업체도 많다.
수출 부진과 경기 불황에 지친 기업들의 한숨 소리는 전국 곳곳에서 들리고 있다. 부산 경제를 떠받치는 유통, 물류는 매출이 작년의 반 토막이 났고, 조선·기계 산업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평택 화성 울산 여수 등 해외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지역의 기업들도 글로벌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크게 흔들리고 있다. 수출 제조업을 뒷받침하는 뿌리 기업들이 썩어가고 있다.
동아일보가 대한상공회의소와 함께 전국 지역상공회의소 회장들을 대상으로 물어보니 10명 중 7명은 지금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나쁜 상황이라고 답했다. “앞이 안 보인다” “내년을 어떻게 버틸지 막막하다”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 팽배하다. 줄도산 징조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국 법인파산 신청 건수는 총 1363건으로 파산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3년 이후 최대다.
기업 현장에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귀를 닫고 있다. 경영의 숨통을 틔워줄 규제 완화는 소식이 없고 오히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처럼 기업을 옥죄는 법만 늘고 있다. 기업 회생을 도울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국회의 무관심 속에 생명을 다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 제조업체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에 대해 ‘체감한다’는 응답은 3.4%에 그쳤다.
중소·중견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고 고용의 88%를 담당하는 한국 경제의 근간이다. 뿌리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의 회복도 장담할 수 없다. 현장에서 기업들의 목소리를 들어 규제 완화, 인력난 해소, 세제·금융 등의 지원 등 시급한 과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가야 한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경기 회복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했지만 느긋하게 기다릴 순 없다. 호흡기를 달고 사는 중소기업들엔 버틸 시간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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