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광대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 스타 데이비드 보위가 1976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보위보다 76년 앞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는 광대 그림으로 유명하다. 평생 100점이 넘는 피에로를 그렸다. 루오에겐 광대가 어떤 의미였을까?
‘피에로(1937년·사진)’는 루오가 66세 때 그린 것으로 화가로서의 경력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제작됐다.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머리띠를 두른 피에로는 크고 퀭한 눈으로 먼 데를 응시하고 있다. 슬픈 표정으로 상념에 빠진 듯한 그의 뒤로 등대가 있는 바다 풍경화가 걸려 있다.
피에로는 16세기 이탈리아 희곡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페드롤리노에서 유래했다. 17세기 이후 파리에서 공연이 성행하면서 어릿광대의 대표적 캐릭터가 되었다. 피에로는 슬픈 광대이기 때문에 절대 웃지 않는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으로 타인을 웃게 할 뿐이다.
광대는 예수와 함께 루오가 평생 몰두했던 주제였다. 파리에서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루오는 화가가 된 뒤에도 자신처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30대부터 피에로나 매춘부 등 사회에서 가장 바닥에 있는 이들을 소재로 그리기 시작했다. 신앙심이 깊어 예수 수난과 같은 종교적 주제도 깊이 파고들었다. 예수 역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이들 속에 살며 고난을 당했으니 루오 자신이나 광대의 처지와 다를 바 없다고 여겼을 터다. 그러니까 루오에게 광대는 예수처럼 고통과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진 인간에 대한 은유였다. 동시에 순진함과 영혼의 순수함을 상징했다.
가수 보위가 자신을 무대 위의 광대로 여겼다면, 화가 루오는 고통에 빠진 고뇌하는 보편적 인간상으로 광대를 그렸다. 광대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연기하는 배우이자, 고통 속에 살아가는 보통의 인간인 것이다. 살았던 나라와 시대는 달랐지만 두 예술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같아 보인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다 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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