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우크라이나, 무관심과의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2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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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작전 초라한 성과에 서방 피로감 커져
‘휴전 협상-방어전 전환’ 압박 더욱 커질 것

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우크라이나군은 지난주 남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작지만 중요한 진전을 이뤘다. 치열한 교전 경계선이던 드니프로강 건너 동쪽으로 진출해 러시아군을 밀어내고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소식이다. 최근 들어 우크라이나군이 거둔 가장 뚜렷한 성과이자 미국과 서방을 향해 전쟁 비관론은 섣부르다는 점을 주장할 수 있는 소중한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6월 초부터 5개월 넘게 계속된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 작전은 답답할 정도로 더뎠고 성과는 미미했다. 반격 작전 이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의 마을 몇 곳을 탈환했지만 전반적으로 양측 간 전선에는 변화가 거의 없다. 서방의 무기 지원 지연 탓도 크다지만 ‘기대 이하를 넘어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는 실망스러운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가 2014년 병합한 크림반도까지 포함해 그간 잃은 모든 영토를 회복한다는 목표지만 지뢰밭과 참호, 함정, 요새로 겹겹이 쌓은 러시아군 방어선조차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엔 군 총사령관까지 이런 상황을 제1차 세계대전의 교착 국면에 비유하며 “돌파구가 마련될 것 같지 않다”고 밝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제 그 반격 작전도 계절의 절벽에 다다르게 된다. 우크라이나 흑토지대가 진흙탕으로 변하는 가을 우기로 접어들고 곧이어 혹독한 겨울 추위가 다가오면 이 전쟁은 공세에서 수비로 바뀔 수밖에 없다. 드론을 이용한 양측 간 원거리 폭격은 이어지겠지만 당분간 ‘진흙장군’과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면서 전선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젤렌스키도 최근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신속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초조감을 드러냈다.

사실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더 큰 전쟁은 국제사회를 향한 무관심과의 싸움이다. 중동의 이스라엘-하마스 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뒷전으로 밀어냈다. 10월 초까지 CNN방송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뉴스는 전체의 약 8%를 차지했지만 하마스의 10·7 기습공격 이후 1% 밑으로 뚝 떨어졌다. 그렇게 우크라이나 전쟁이 헤드라인에서 사라지면서 서방세계, 특히 미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피로감은 한층 커지는 분위기다.

서방 외교가와 싱크탱크에선 이제 우크라이나가 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반격 작전의 초라한 성과야말로 실지(失地) 회복이라는 전쟁 목표를 가까운 시일 내엔 실현하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만큼 지금의 고강도 공세 전략을 접고 휴전 협상과 함께 장기 방어전 태세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명예회장도 최근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이제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그 수단과 함께 전략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썼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미국 내 논란이 거세지고 유럽 일부 국가마저 동요하는 상황에서 미국의 손절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기 전에 서둘러 전략 변경에 나서라는 권고다.

국가의 생존전략이 의지와 목표만으로 채워질 수는 없다. 스스로의 역량과 동원 가능한 외부 지원, 그리고 상대와의 엄정한 힘의 비교를 토대로 냉철한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향해 그런 현실적 선택을 한 뒤 민주주의와 경제 번영으로 궁극적 승리를 기약하라는 서방의 압박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쓰디쓴 약을 받아든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우리로선 남 일 같지 않다. 70여 년 전 6·25전쟁 와중에 원치 않는 휴전 협상에 직면했던 한국이기에.

#우크라이나#무관심과의 전쟁#반격작전#초라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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