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와 광주를 대중교통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기차보다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기차를 타면 ‘ㅅ’자 형태로 오송역까지 가서 환승해야 하고, 버스와 비교해 시간은 별 차이 없는데 요금은 두세 배 비싸다. 이 때문에 대구와 광주를 바로 잇는 철도를 건설하자는 얘기가 일찌감치 나왔지만 20년 넘게 공회전했다. 광주대구고속도로도 하루 교통량이 전국 고속도로 평균의 절반이 안 될 만큼 한산한데 굳이 철도를 깔아야 하느냐는 거였다.
▷대구∼광주 간 철도 건설은 재작년이 돼서야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포함됐지만 이마저도 후순위 사업으로 밀렸다. 비용 대비 편익이 1보다 커야 경제성이 있다고 보는데, 이 수치가 절반에 못 미친 탓이다. 당시 198km 길이의 일반철도를 단선으로 놓는 데 4조5000억 원 이상의 사업비가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대구시와 광주시가 2038년 아시안게임을 공동 유치하겠다며 철도 조기 착공을 밀어붙이더니 올 8월 ‘달빛고속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됐다.
▷대구 옛 지명 ‘달구벌’과 광주의 순우리말 ‘빛고을’의 앞 글자를 딴 고속철 건설을 사업이 타당한지 따져보는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추진하려는 법안이다. 대구가 지역구인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대표 발의하고 여야 의원 216명이 서명해 헌정 사상 최다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영호남 화합과 국토균형개발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거대 양당의 텃밭인 대구와 광주 지역의 표심을 사려는 선심성 법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야는 앞서도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공항 이전’을 특별법으로 주고받기 한 전력이 있다.
▷당초 계획과 달리 특별법은 205km 구간에 복선 고속철도를 건설하도록 했다. 최고 시속 300km를 보장하는 선로를 2개 이상 깔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맞추면 사업비가 11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국토교통부는 추산했다. 더군다나 설계 변경으로 사업비는 눈덩이처럼 불지만 시간 단축은 고작 2분에 그친다. 일반철도를 깔고 고속 운행하면 86분, 고속철도로 하면 84분이 걸린다고 한다. 이미 일반철도 사업비도 물가 상승으로 6조 원을 넘겼는데, 2분 당기려고 5조 원을 더 쓰겠다는 것이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홍준표 대구시장, 강기정 광주시장을 만나 연내 특별법을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힘 소속 홍 시장은 “국회가 결정하면 기획재정부는 따라오게 돼 있다”고 했다. 여야가 정부 동의도 거치지 않고 초대형 사업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2035년 달빛고속철의 수송 인원은 주중 하루 7800명 정도라고 한다. 정치 논리로 탄생해 텅 빈 지방공항들처럼 달빛고속철도 역시 텅 빈 열차가 달릴 수 있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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