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 제주도로[공간의 재발견/정성갑]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3일 23시 24분


“저 야반도주했잖아요. 그때는 사직서도 마음대로 못 썼어요.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걸로 알았으니까(웃음). 도저히 안 되겠어서 밤에 상사 책상에 사직서를 올려 놓고 제주행 비행기를 탔어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었는데 다시 꿈틀꿈틀 뭔가가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재주상회 고선영 대표는 그렇게 ‘제주 사람’이 됐다. 서귀포시 인덕면 산방로에 사무실이 있는 재주상회에서는 오직 제주 콘텐츠로만 책 전체를 꾸리는 잡지 ‘iiin’도 발행하는데 나는 이 간행물의 오랜 팬이다. 특히 할망들이 나와 이런저런 인생 조언들을 날리는 인터뷰 칼럼. 훈훈하고 재미있어서 하하 웃으며 페이지 귀퉁이를 접은 적도 여러 번이다.

지난 호에 나온 강순자 해녀 할망이 한 말은 이랬다. “일을 한다는 건 너무 좋은 거. 일하믄 돈도 벌고 물질하는 친구 만나 수다 떨고. 그게 막 재밌어. 그러니까 밥 먹다가도 수저 내려놓고 따라 나가는 거.” 그간 수많은 할망의 얘기를 읽었는데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말은 본 적이 없다. 깊게 파인 주름 위로 웃음이 한가득이고 거기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미덥고 긍정적인 것들. 나도 따라서 힘이 난다. 고 대표도 마찬가지인지 몇 년째 신나게 일한다. 제주 김밥 투어부터 한림수직 재생 프로젝트까지 제주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콘텐츠의 믿음직한 관제탑이자 발신기지가 되고 있다.

후배 명연이는 몇 년 전부터 제주에 살고 있다. 그녀가 살아내는 삶의 무대는 나보다 몇 배는 큰 것 같다. 사진 찍는 남편과 호주 태즈메이니아로, 아이슬란드로 훌쩍 여행을 떠나 캠핑 하고, 빙하 트레킹하며 새로운 것들을 해 보는 식이다. 이 부부가 제주도 이주를 결심한 건 곽지 해수욕장 덕분. 아늑하고 이국적인 풍경,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에 취한 이들은 어느 날 ‘그래, 제주도에서 살자’ 하고 조용히 마음을 먹었다. 몇 달 전 만난 명연은 행복해 보였다. 당연히 먹고사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큰 문제 없다고. 제주도의 하늘길이 매일 열리듯 살다 보면 계속 새로운 일과 길이 열린다고. 나로 존재하는 한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 아닐까 싶었다.

지난주에는 제주도에서 중식당을 하는 부부를 만났다. 영국 런던 세인트마틴 스쿨에서 만난 한국인 아내와 중국인 남편은 어느 날 본인들이 패션보다 음식에 더 애정이 많은 것을 알고 이곳 제주도에 로아앤메이라는 중국 후난성 가정식 요리 전문식당을 차렸다. 슬슬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 이곳은 ‘동쪽의 보석’이라는 애칭이 붙일 만큼 귀한 식당이 되었다. 지친 어느 날, 그곳으로 가 볼까? 떠올릴 수 있는 땅이 있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3년 전, 제주도로 떠난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행복하고 싶어 제주도로 떠난다.”

#제주도#야반도주#고선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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