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불안감이 이해 안 되는 바는 아니다. 당장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다소 선동적인 반일 외교로 우리 국민들까지 불편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을 두고 현 여권에선 ‘반일 죽창가 선동질’이란 극단적 수식어까지 붙였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한일 관계는 극적인 전환점을 맞이했다. 3월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자 두 달 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답방으로 화답했다. 두 정상은 올해만 7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만난 자리에선 윤 대통령이 기시다 총리를 두고 “국제사회에서 저와 가장 가까운 분”이라고 했고, 기시다 총리는 “이렇게 윤 대통령과 나란히 이야기하니 감회가 깊다”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이런 한일 화해협력 무드의 시작점은 3월 우리 정부가 내놓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배상 해법 발표였다. 정부 산하 재단이 한일 기업으로부터 기여금을 받아 피해자에게 우선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우리 정부가 제시했다.
양국 간 최대 현안인 강제징용 문제의 실마리가 풀리자 다른 양국 이슈들도 풀어갈 계기가 마련됐다. 해법 발표 후 강제징용 피해자 15명 중 11명은 판결금을 수령했다. 한일 관계는 외교·안보·경제 등 분야마다 해빙기 특수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가 문제다. 강제징용은 여전한 현안이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앞서 7월 재단은 판결금을 수령하지 않은 피해자 4명에 대해 공탁하려 했지만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가 제3자 변제안을 반대한다”는 취지로 공탁관이 반대해서다.
더 근본적인 불안 요소는 일본의 태도다. 앞서 강제징용 해법 발표 당시 정부는 일본이 ‘성의 있는 호응 조치’에 나서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우리가 먼저 잔의 반을 채웠으니 일본이 나머지 반을 머지않아 채워줄 것으로 봤다.
이후 반년 넘게 흘렀다. 일본은 사죄와 배상 모두 실망스럽다. 사죄는 기시다 총리가 5월 방한 때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 게 전부였고, 배상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와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가 만든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 한일이 각각 10억 원을 내놓은 게 전부였다.
일본은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명문화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계승하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배상 측면에선 피고 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이 재단에 돈을 내놓기 어렵다면 미래 파트너십 기금에라도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 이 기금의 출연 액수도 대폭 늘려야 한다.
이게 최소한의 성의다.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이 불안하다면 한국은 불만스럽다. ‘한국 정권 교체 리스크’가 불안하다면 성의 있는 조치가 우선이란 걸 일본 정부는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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