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늘어도 교통사고 건수는 줄고 있다. 자동차 안전 기술이 좋아지고, 교통안전 시설과 정책이 선진화하며, 국민 안전 의식 수준이 높아진 덕분이다. 그런데 유독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내는 사고는 증가 추세다. 22일 새벽에는 강원 춘천에서 82세 남성이 몰던 차가 파란불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3명을 덮쳐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운전자는 “신호등과 보행자들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해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는 3만4652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5년간 전체 교통사고는 9.7% 줄었는데 고령자 사고는 29.7% 급증했다. 교통사고를 가장 많이 내는 연령대는 20세 이하로 면허 소지자 1만 명당 121건이다. 다음이 65세 이상으로 79건. 하지만 교통사고 사망자를 가장 많이 내는 연령대는 65세 이상이다. 고령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전체 사고의 16%인데 사망 사고는 24%였다(2021년 기준).
▷운전은 확인, 예측, 결정, 실행 과정을 거친다. ‘확인’ 단계에선 시력 청력 등 감각능력, ‘예측’과 ‘결정’엔 주의력과 정보 처리 등 인지능력, ‘실행’엔 운동능력이 필요하다. 이 중 운전에 가장 중요한 시력은 60대가 되면 30대의 80% 수준이 되고, 돌발상황 반응 시간은 1.4초로 젊은 운전자들의 2배로 늘어난다. 교통사고에 영향을 주는 질환은 백내장, 퇴행성 관절염 등 모두 23종인데 70세 전후로 발병률이 증가해 교통사고 위험도도 높아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고령자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이 월등히 높다며 주요 원인으로 허술한 면허 관리를 꼽았다. 현행 면허 갱신 주기는 65∼74세는 5년, 75세 이상은 3년이다. 80세 이상이 되면 교통사고 위험도가 60대의 2배가 되므로 갱신 주기를 단축할 필요가 있다. 영국은 70∼79세는 3년, 80세 이상은 1년이다. 일본은 71세 이상은 3년인데 75세부터는 인지 및 운전 기능 검사를 통과하고 2시간짜리 고령자 강습을 받아야 하며 교통법규 위반 이력이 있으면 실기시험도 봐야 한다.
▷많은 나라가 면허 자진 반납 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반납률은 높지 않다. 나이 들수록 건강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이동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생계 활동을 하는 노년도 많다. OECD는 고령자의 이동권을 제한하면 행복도를 떨어뜨려 교통사고 못지않은 사회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해 고령자를 도로에서 몰아내려 하지만 말고 이들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관련 시설을 정비하고, 안전장치 장착을 지원하며, 취약지역의 대체 교통수단도 늘려야 한다. 2040년이면 고령 운전면허 소지자가 13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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