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7조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小)소위’ 심사에 들어갔다. 예산안 처리의 법정 시한(12월 2일)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예결위 소위원회 심사에서 합의를 보지 못하자 소위의 소위 격인 소소위를 가동한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안 심사가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 기획재정부 관계자 등 5명만이 모인 밀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법적 근거 없이 임의로 열리는 소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데다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는다. 감시의 눈길이 닿지 않는 짬짜미 협상엔 온갖 예산 민원과 지역구 쪽지 예산이 끼어들기 마련이다. 여야가 정치적 흥정을 통해 이런 선심성 예산들을 나눠 먹는 구태가 올해도 소소위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수십억∼수백억 원대 인프라 사업 투자를 포함한 대규모 예산안들을 막판에 밀어 넣으니 사업 타당성 또한 제대로 검토될 리 없다.
내년엔 특히 총선을 앞둔 시점이어서 여야 할 것 없이 증액 경쟁에 나서고 있다. 실세 의원들이 내민 지역구 예산안 중에는 증액 규모가 많게는 100억 원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악화하는 국가 재정건전성은 아랑곳하지 않는 지역구 챙기기 예산이 담합 처리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여야가 막상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연구개발(R&D) 분야 등 핵심 예산을 놓고 고민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은 상임위 예비심사에서 여당과의 충분한 협의 없이 1800억 원대 원전, 2400억 원의 청년 일자리 예산 등 정부의 주요 사업 예산을 전액 삭감해 버렸고, 국민의힘 또한 설득과 협치 노력 없이 거야의 독주를 사실상 방치했다. 그러다 650조 원이 넘는 나라 살림을 극소수가 주무르게 됐다.
국가 정책의 밑바탕이 되는 예산안은 분야별 검토를 거쳐 15명의 예결위원 전체가 심도 깊게 논의해도 모자란 사안이다. 최악의 세수 부족에 직면한 만큼 혈세를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도 어느 때보다 높다. 소소위를 놓고 해마다 제기돼온 깜깜이, 졸속 심사의 문제점을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다는 말이다. 예산 포퓰리즘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국회가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올해 시한이 임박해 소소위 형식의 협상이 불가피하다면 전 협의 과정을 속기록으로 빠짐없이 남기고 주요 내용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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