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11월, 미국 시카고 갱단 두목 딘 오배니언이 꽃집에서 총탄 세례를 받았다. 이탈리아 출신 갱들의 소행이었다. 경찰이 도착해 보니, 그는 벌집을 방불케 하는 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왼손 근처에는 꽃을 다듬는 가위와 피에 젖은 국화가 놓여 있었다. 꽃집을 방문했다가 불의의 습격을 받았던 걸까?
아니었다. ‘본업’과 어울리지 않게 평소 국화를 좋아했던 이 갱 두목은 이 꽃가게를 인수한 뒤 타고난 감각으로 멋진 꽃장식을 만들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날도 그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국화꽃을 사랑한 갱단 두목. 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은 이 스토리는 이후 이런저런 내용이 덧붙여져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국의 문화사 전문가 캐시어 바디에 따르면 화가 클로드 모네 역시 국화를 사랑한 ‘찐팬’이었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색감을 가진’ 국화에 매료되어 스케치 여행을 떠나서도 키우던 국화 상태를 세세하게 챙길 정도로 말이다.
서양인들의 이런 국화 사랑은 근대 이후에 생겨난 것인데, 다양하고 이색적인 국화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들어오면서부터였다. 중국 국화가 먼저 소개돼 인기를 얻었으나 일본에서 들어온 형형색색의 풍성한 품종들이 더 눈길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 역시 이 인기에 힘입은 것인데, 이 작품은 ‘국화 부인’이라는 당시 베스트셀러 소설을 무대로 옮긴 것이다.
국화가 동아시아에서 발달한 건 찬 서리에도 꽃을 피워 장수와 절개를 상징하는 사군자로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그래서 다들 동아시아를 원산지로 알고 있었는데, 2019년 제니퍼 맨델 미국 멤피스대 교수팀이 국화과의 DNA를 분석해 보니, 뜻밖에도 원산지는 남미였고 출현한 시기도 무려 8300만 년 전이었다. 그러니까 공룡이 한창 활보하던 백악기 시절 삶을 시작해 공룡이 사라질 정도로 혹독한 기나긴 대멸종 기간에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삶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만한 생존력을 만들어낸 덕분인데, 예를 들어 꽃병에 국화나 민들레, 해바라기 같은 국화과 꽃들을 꽂아 놓으면 다른 꽃들보다 훨씬 오래간다. 다른 꽃들은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뿌리에 저장하기에 꽃을 꺾으면 이걸 공급받지 못해 금방 시들어 버리지만 국화과 꽃은 이걸 잎에 저장해 필요할 때 가져다 쓰는 까닭이다. 가뭄에도 꽃을 피울 수 있도록 개발한 능력이 꽃병에서 빛을 발하는 것인데, 국화가 애도용으로 쓰이는 것도 이래서일 것이다. 잎은 시들어도 화사한 꽃은 상당 기간 지속된다. 죽음을 기리는 곳에 긴 생명력을 지닌 국화라…. 왠지 꽃을 사랑한 갱단 두목 같은 묘한 대조인데, 어쨌거나 추위에도 환한 꽃을 피우는 국화꽃 같은 능력이 우리에게도 필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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