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6남매 아빠다. 놀이동산에 가면 비용이 남들의 배로 들고, 함께 놀이기구를 타거나 식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이들과 감자탕집에 가면 아이들 먹을 고기를 발라 주다가 지쳐서 나와 아내는 급히 밥만 말아 먹고 나오곤 한다. 여행 가면 마땅한 숙소를 찾지 못해 캠핑장에 묵기 일쑤다. 잘 곳을 찾지 못해 ‘가수’임을 밝히고 숙소에 읍소해 볼까 생각한 적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불편해도 아이들 키우는 기쁨이 훨씬 크다. 정작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남들의 시선이다. 다자녀 가정 관련 온라인 게시글이나 기사를 보면 ‘왜 사서 고생하는지 모르겠다’, ‘자녀들이 불쌍하다’는 댓글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 다자녀 가정의 부모는 본인 가족의 기사에 ‘짐승이다’, ‘햄스터냐’는 모욕적인 댓글을 단 누리꾼들을 고소하기도 했다.
이런 인식이 퍼지게 된 데에 미디어와 매스컴에 비치는 가족과 육아의 모습 탓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미디어에는 좋은 직장, 좋은 집, 좋은 차가 없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콘텐츠들이 넘쳐난다. 좋은 산후조리원에 가고 각종 육아용품을 사고 비싼 교육을 시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이에게 죄짓는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도 쉽게 볼 수 있다.
연일 스트레스, 중2병, 욜로, 비혼주의 같은 단어들이 유행이라며 반복적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말이란 참 무서워서, 계속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이 정당한 것처럼 인식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청소년의 일탈도 ‘중2병이니까’, 젊은이들의 출산 포기도 ‘욜로니까’ 하고 쉽게 정당화된다. 결과적으로 이런 부정적, 비관적 인식이 최악의 출산율을 낳고 있는 건 아닐까.
정부는 출산, 육아 관련 각종 지원책을 쏟아놓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란 무언가 주면 줄수록 ‘그게 그만큼 힘든 일인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출산과 육아를 돕기 위한 지원이, 자칫 ‘출산과 육아는 고통스러운 것’이란 이미지를 강화시키고, 그래서 ‘보상받아야 하는 것’이란 인식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가정에 더 많은 돈을 제공하거나 정책을 지원한다고 출산율이 곧장 올라갈 거라 생각지 않는다. ‘6남매면 나라 지원 많이 받았겠다’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나 역시 특정 제도나 정책에 기대 아이를 키우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볼 때 과연 지금만큼 안전하고 살기 좋은 세상이 또 언제 있었을까. 어느 학자가 말하기를, 현대의 개인은 과거 개인이 노예 200명을 거느릴 때와 같은 편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다. 전국에서 가장 좋고 비싼 동네라는 강남의 출산율이 가장 떨어지는 걸 보면 편함과 부유함이 출산, 육아,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가정은 관계를 배우는 곳이다. 사람의 관계에는 놀라운 힘이 있다. 특히 부모와 자녀, 형제간의 관계는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배움을 선사한다. 그런 관계가 소홀히 여겨지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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