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인 노천명은 사슴을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고 표현했다. 여기 다른 무언가가 길어서 슬픈 동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름이 너무 길어 슬픈,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다.
내 전체 이름은 ‘카를로스 아우구스토 카르도주 고리토’다. 한글로 적으면 16자, 로마자 알파벳으로는 26자나 된다. 내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인천공항에 마중 나와 주신 분은 여러 장의 종이에 내 이름을 인쇄해 붙인 푯말을 들고 서 계셨다. 인사말도 하기 전, 그분이 나에게 건넨 첫마디는 “이름이 정말 이렇게 긴가요?”였다.
한국은 나처럼 젊은 외국인이 살기에 매우 편한 나라다. 휴대전화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공공기관 서류 발급, 신용카드 사용, 인터넷 뱅킹, 심지어 멤버십 사용과 적립도 모두 손쉽게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외국인들에게는 이 일이 ‘고난의 연속’이다. 이 모든 편리함을 이용하려면 통신사에 가입해야 하고 처음 통신사에 가입할 때 한글 이름을 내야 한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은 한글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첫 한글 이름’은 오로지 휴대전화 판매원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띄어쓰기, 하이픈(-) 포함 여부, 영문 대소문자 구분, 전체 이름을 다 넣을지 아니면 일부만 넣을지, 어떤 순서로 할지 등을 판매원이 정한다. 그리고 나중에 이 이름 중 한 글자만 틀려도 고난이 시작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백신 접종을 예약할 때였다. 예약 전쟁을 뚫고 어렵게 성공했지만, 병원에 갔더니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대전화 인증으로 확인되는 이름, 건강보험에 등록된 이름 그리고 병원 시스템에서 확인되는 이름이 모두 달라서 본인 확인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날은 백신을 맞지 못하고 허탈하게 집에 돌아와야만 했다. 이후 필요 서류를 보완하여 결국 백신을 맞을 수 있었지만, 상심이 컸다. 이렇게 신속하게 자국인뿐 아니라 외국인 거주자들에게까지 백신을 보급할 수 있는 나라, 휴대전화로 실시간 백신 현황을 볼 수 있고 예약까지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뛰어난 나라에서 왜 외국인들은 내가 15년 전 한국에 왔을 때와 비슷한 불편을 계속 겪어야 할까.
이건 외국인의 이름과 관련한 시스템이 잘 정비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다. 여러 서비스를 이용할 때 꼭 한글 표기 이름을 적게 하는데 어떤 곳에서는 심지어 칸이 모자라 이름의 마지막 몇 글자가 빠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까를로스’, 또 다른 이는 ‘카를로스’라 적는다. 외국인 거주자들은 민간 서비스는 물론이고 공공 서비스를 이용할 때조차 생각지 못한 불편을 겪는다.
현재 한류는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곧 외국인 유학생 30만 명 시대, 한국 방문 관광객 3000만 명 시대가 온다. 이러한 시기에 ‘한글 이름’과 관련한 시스템 정비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 정부가 개선에 나서서 내가 그간 경험했던 어려움을 다른 ‘긴 이름을 가진 외국인들’은 겪지 않았으면 한다. 이름 때문에 한국의 발전과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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