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이 때로는 사랑으로 이어진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기념비적인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연민에서 시작된 사랑의 이야기다. 트리스탄은 콘월(잉글랜드) 기사이고 이졸데는 아일랜드 공주다. 앙숙인 두 나라가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트리스탄이 아일랜드 기사 모롤트를 죽이게 된다. 그도 모롤트의 독 묻은 칼에 치명상을 입는다. 그 독을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이졸데 공주뿐이다.
트리스탄은 탄트리스로 이름을 바꾸고 적국인 아일랜드로 간다. 죽음을 각오한 모험이다. 그러나 이졸데는 모롤트의 머리에 박혀 있던 칼 파편이 탄트리스의 칼에서 부러진 부분과 일치하는 것을 보고 그의 정체를 알아본다. 이제 복수할 일만 남았다. 그런데 그녀가 칼로 찌르려는 순간, 그가 그녀를 쳐다본다. 손도 아니고 칼도 아니고 눈을 쳐다본 것이다. 그녀는 1막 3장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가 내 눈을 보았다./그의 비참한 처지가 내 마음에 애처로웠다!” 그녀는 칼을 떨어뜨리고 그의 상처를 치료해준다. “그가 건강해져서/집으로 돌아가도록./그 눈길로 더는 괴롭히지 못하도록!”
트리스탄이 그녀의 눈이 아니라 칼을 쳐다보았더라면, 그는 그 칼에 찔려 죽든지 다른 아일랜드인들의 손에 죽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의 눈길은 그녀에게 죽이지 말고 살려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고,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 애원에 응답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의 눈길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영혼 안에 있는 뭔가를 건드리거나 깨워, 고통에 몸부림치는 그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그 연민은 곧 행동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탄트리스가 트리스탄이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고 치료해서 자기 나라로 돌려보냈다. 그의 눈길이 그녀를 살렸다. ‘타자의 철학자’라 불리는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 같으면 이것을 두고,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얼굴과 눈길에 사로잡혀 인질이 되었다고 했을 것이다. 타자를 향한 윤리적 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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