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규인]프로야구 LG가 성공한 이유, “누구보다 실패했기 때문에”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5일 23시 42분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황규인 스포츠부 차장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세상은 이 열세 글자를 보고 심장이 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시대에 따라 스포츠 경기장에서 ‘아리랑 목동’, ‘아파트’, ‘그대에게’가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2023년 현재 꿰차고 있는 노래가 이 가사로 시작하는 ‘질풍가도’다. 스포츠 팬들은 원래 애니메이션 주제가였던 질풍가도를 ‘응원을 부르는 노래’라고 평한다. LG 트윈스가 29년 만에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정상을 차지한 순간 TV 중계에서 흘러나온 노래 역시 질풍가도였다.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LG는 올 시즌 한미일 프로야구 52개 팀을 통틀어 도루 실패(101개)가 가장 많은 팀이다. LG를 제외하면 한미일 어디에도 도루 실패 50개를 넘긴 팀조차 없다. 이렇게 실패가 많은 탓에 LG는 한미일 프로야구 전체 2위에 해당하는 도루 166개를 성공시키고도 성공률이 62.2%밖에 되지 않았다.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도루 성공률이 75%가 되지 않을 때는 뛰면 뛸수록 손해라고 계산한다. 올 시즌 LG는 ‘화력’이 워낙 뛰어난 팀이라 도루 실패에 따른 손해가 더 컸다.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그러나 올 시즌부터 LG 지휘봉을 잡은 염경엽 감독 생각은 달랐다. 그는 “팬들과 언론은 도루 실패 숫자를 봤겠지만 내가 집중한 건 공격적인 팀 컬러를 만드는 것이었다. 도루 자체의 효과보다는 뛰는 야구를 통해 선수들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도루 실패가 일상다반사가 되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LG는 도루 실패를 1개라도 기록한 경기에서 승률 0.767(56승 1무 17패)을 기록했다. 반면 도루 실패가 없는 경기에서는 0.435(30승 1무 39패)에 그쳤다. 도루 실패가 오히려 팀 성적을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던 거다.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2021년 ‘실패연구소’를 설립한 KAIST는 올해 10월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 사진전을 열었다. 전시 작품 가운데 ‘누군가 일으켜 준다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던 사진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잔디 위에 넘어진 흰 의자를 찍은 이 사진에는 “지금은 비록 누워 있지만 네 다리 성하고 부서진 곳 없으니 누군가 일으켜 준다면 금방 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조성호 KAIST 실패연구소장은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사진전을 연 이유에 대해 “(혼자서) 괴로워하던 실패를 공유하고 소통하다 보면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게 된다”고 설명했다. LG가 실패를 통해 성공한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질풍가도 노랫말처럼, 우리 서로의 응원을 믿고, 가슴 두근거리도록,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하자.

“세상에 도전하는 게 외로울지라도, 함께해 줄 우정을 믿고 있어. 한 번 더 나에게 질풍 같은 용기를, 거친 파도에도 굴하지 않게. 드넓은 대지에 다시 새길 희망을, 안고 달려갈 거야, 너에게.

#프로야구#lg#성공#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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