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진영]저출산 해결사로 기대했던 에코붐 세대의 ‘배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6일 23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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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2세 ‘에코부머’도 결혼 출산 외면
6가지 문제 해결하면 1.5명대로 뛸 것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한국의 출산율은 낮은 것도 문제지만 낮은 상태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어 더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출산율 하락세가 평균 12.9년간 지속되다 반등해 합계출산율 1.6명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1.3명 미만인 초저출산이 2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현상이다. 출산율 하락을 막아줄 기대주였던 ‘에코붐 세대’의 출산 붐도 불발될 가능성이 높다.

에코붐 세대(1991∼1996년 출생)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출생)의 자녀 세대로 부모들처럼 출생률이 높았던 연령군이다. 올해 27∼32세가 된 이들이 코로나로 미뤄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내년에 출산율이 0.7명으로 바닥을 찍고 2040년엔 1.19명으로 반등할 것이라는 게 정부 추계였다. 하지만 이 세대의 혼인율은 올 1분기 반짝 반등한 뒤론 코로나 시기보다 더 떨어져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출산율도 4분기엔 0.6명대로 내려갈 전망이다.

초저출산 장기화는 사회 모든 분야에 악영향을 준다. 정부는 출산율 0.98명이 유지될 경우를 가정해 2047년 서울의 종로 서초 송파 등 23개구까지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지역별 소멸 대책을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에코붐 세대의 출산 붐에 기댄 연금재정추계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일하는 인구 1명이 65세 이상 1명을 부양해야 하는 시기는 2060년, 경제 역성장 시작 시기는 2050년으로 내다봤는데 지금의 출산율로 봐서는 더 앞당겨질 수 있다.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는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는 ‘인플레이션적’ 은퇴자 수가 소비보다 생산량이 많은 ‘디플레이션적’ 근로자를 넘어서면 이러한 인구구조만으로도 인플레이션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결혼 안 하고,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으며, 낳더라도 하나만 낳고 끝내는 저출산 현상의 원인과 대책은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6가지로 요약돼 있다. 청년 고용률, 혼외 출산 비중, 육아휴직 이용 기간, 보육과 아동수당 등 가족 관련 정부 지출, 도시 인구 집중도, 주거비용이 OECD 평균치와 한참 떨어져 있는데 이 차이만 줄이면 출산율이 0.845명 늘어나 1.5명대가 된다는 내용이다.

이 중 출산율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변수가 인구 집중도다. 이를 한국의 5분의 1밖에 안 되는 OECD 수준으로 낮추면 출산율이 0.414명 오른다. 실제로 정부가 소득 수준이 비슷한 중앙부처 공무원들을 조사해 보니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에 사는 공무원은 자녀 수가 평균 1.36명인데 쾌적한 세종에 사는 공무원은 1.89명이었다(2021년 조사).

나머지 변수들은 혼외 출산율을 제외하면 수도권 집중도 완화보다 실행이 쉽고 역대 정부의 저출산 대책에 빠짐없이 포함됐던 내용들이다. 그런데 육아휴직 이용 기간이 아직도 OECD 평균의 17% 수준이고, 경제 규모 대비 가족 관련 정부 지출이 OECD의 64%밖에 안된다. 출산율에 좋다는 건 다 해본 것도, 몰라서 못 한 것도 아니다. 기본으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한 결과가 해외에서도 ‘흑사병 수준의 재앙’이라며 놀라는 초저출산 장기화다.

OECD 회원국들이 출산율 하락세를 막아낸 비결은 부머들이 절로 아이를 많이 낳아준 덕이 아니라 고용, 돌봄, 교육, 주거 문제 해결 등 공식 같은 정책을 제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정책들은 출산율이 아니어도 정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니 이젠 특단의 대책을 찾지 말자. 해야 할 일과 그 효과까지 숫자로 나와 있다. 제대로 된 실행만 남았다. 저출산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무능한 정부의 결과물일 뿐이다.

#저출산 해결사#에코붐 세대#에코부머#결혼 출산 외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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