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때문에 종종 중동 지역을 찾는다. 현재 이 칼럼을 쓰고 있는 곳도 아랍에미리트(UAE) 7개의 토후국 중 가장 큰 지역이자 수도인 아부다비이다. 현재 UAE의 간판 도시인 두바이에서는 제28회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열리고 있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이 모여 하는 회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열리는 COP28이 중동 산유국의 대표 격인 UAE 주최로 열리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를 막는 일에 가장 소극적일 것 같은 산유국에서 어째서 기후변화 회의를 주최하는 것일까? 잘 들여다보면 중동 산유국들과 관련한 편견을 깰 수 있다.
요즘 중동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이야기되는 것이 사우디아라비아가 기획하고 있는 ‘네옴시티’다. 네옴시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북서부 홍해 인근 사막에 건설될 미래형 신도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고 있는 ‘비전 2030’의 핵심 사업이다. 그런데 사실 UAE는 네옴시티의 ‘네’ 자도 나오기 전에 이미 ‘마스다르시티’라는 비슷한 개념의 스마트도시를 건설하고 있었다.
아부다비에 있는 마스다르시티는 대전에 있는 KAIST 캠퍼스의 6배 정도 크기의 지역으로, 재생에너지로만 모든 것이 돌아갈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마스다르시티가 다 완공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완공된 건물들이 있어 이미 기업이 들어섰고 일부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 마스다르시티 안에는 재생에너지로 움직이는 자율주행차들이 돌아다닌다. 이곳에서 필요한 에너지는 거의 100% 태양광과 풍력으로 자체 생산하고 있다.
2006년 마스다르시티의 건설 계획이 발표됐고 2008년 실제 건설이 시작됐다. 이 마스다르시티 덕에 UAE는 재생에너지와 관련한 많은 노하우를 축적했다. 그리고 그런 노하우 덕분에 현재 COP28도 주최할 수 있었고, 세계 각국에 재생에너지 기술도 수출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석유 시대를 이끄는 중동 산유국의 대명사로 알려진 UAE가, 탈석유 시대에 재생에너지 개발 주도권을 쥐고 에너지 신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UAE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떨까? UAE도 역시 한국을 에너지 선도국으로 좋게 생각하고 있다. 한국이 지은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UAE의 자랑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번에 새로 발행한 1000디르함, 즉 최고권 지폐 뒷면에 바라카 원전의 사진이 실렸을 정도다.
사실 UAE뿐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한국의 이미지는 매우 좋은 편이다. 예전에 쿠웨이트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눈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쿠웨이트의 공보부에서 해외 홍보를 맡고 있는 타리끄 국장에게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이렇게 답했었다. “밖을 좀 보세요. 덥죠? 한국산 에어컨이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시원하게 대화할 수 있었을까요?” 이 말을 통해 중동 지역에서 한국이 기술적으로 우수하고 선도적이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동과 아랍은 어떤 이미지인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전쟁이 발발하면서 최근 들어 중동과 아랍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평가가 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중동 지역은 매우 넓다. 인구적으로도 그렇고 종교, 문화적으로도 다양한 지역을 포괄한다. 이들 중 일부 지역에서, 일부 세력에 의해 발생한 충돌을 보고 중동에 대한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종종 한국의 미디어에서 중동과 아랍권에 대해 그런 부정적인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오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심을 덜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동의 많은 국가들이 미래 에너지 개발과 관련해 한국과 협력을 맺고 싶어 한다. 한국 정부도 중동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의 노력과 여론의 호응이 함께해야만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이 글이 일반 사람들의 중동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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