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외곽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장에서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개최지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로 확정됐다. 국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이쯤에서 꺼졌지만 외신의 취재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개최지 발표 직후 열린 사우디 대표단의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들은 사우디가 72%란 압도적 득표율을 얻은 비결에 주목했다. ‘1차 투표에서 3분의 2를 득표해 승리한 전례가 없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외신들이 분석한 핵심 비결은 사우디가 초반부터 선두 굳히기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온 한 BIE 회원국 대표는 “사우디가 처음부터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해 ‘여론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귀띔했다.
특히 지난해 7월 일찍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공식 지지를 이끌어낸 점이 상징적이었다. 유럽연합(EU) 내부에서 입김이 센 마크롱 대통령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덕에 사우디의 열악한 인권을 문제 삼는 다른 EU 회원국의 우려 또한 잠재울 수 있었다.
한국은 마크롱 대통령이 사우디의 손을 들어준 같은 달에 국무총리 직속 2030 부산엑스포 유치위원회를 설치했다. 경쟁자가 세계 주요국 정상의 공개 지지를 확보했을 때 뒤늦게 유치전에 뛰어든 셈이다. 한국 대표단의 피땀 어린 노고는 인정하나 초반 대응이 한참 늦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부산시가 엑스포 유치 활동을 시작한 건 약 8년 전인 2015년 2030부산등록엑스포 범시민추진위원회를 마련했을 때부터다. 다만 당시 부산의 유치 활동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지방 정부의 힘만으로 역부족이었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미 4년 전인 2019년 5월 부산엑스포 유치를 국가사업으로 확정했다. 정부가 BIE에 엑스포 유치 신청을 한 시기는 2021년 6월 23일. 같은 해 10월 29일 유치 신청을 한 사우디보다 4개월가량 앞섰다. 중앙 정부와 부산이 이때부터라도 적극적으로 뛰었다면 초반 승기가 한국 몫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정권 교체기를 거쳤고, 국가적 사업에 대한 집중력도 흐려졌다.
최근 1년간 파리 현지에서 지켜본 유치전은 ‘마음만 급한 벼락치기’ 성격이 강했다. 유치 지원 조직은 커졌지만 효과적으로 일하지 않는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제기됐다. 각각 체계적으로 각기 다른 회원국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어떤 나라가 한국으로 기우는 조짐이 보이면 모든 담당자들이 우르르 그 나라에만 몰린다는 얘기가 들렸다.
한국서 유치 지원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찾았다. 휴일 없이 먼 거리를 오가며 힘을 보탠 이들이 많았지만, 혈세를 써 가며 겉치레 유치 활동만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교민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한 인사는 “몇몇 시민단체에 효과적인 유치 방법을 조언했지만 별 관심은 없었고 적당히 요식 행위만 하다 가려는 것 같더라”라고 털어놨다. 총회 직전 부산에서 온 일부 시민단체가 파리 외교가, BIE 본부 근처 등이 아닌 곳에서 부산 홍보 행사를 연 것도 의구심을 자아냈다.
물론 정부와 기업이 유치를 위해 세계를 누빈 지구 400바퀴가 헛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관이 함께 열심히 뛴 덕에 서울에 가려졌던 부산의 가치를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유치전 패배의 경험이 값지게 남으려면 패인을 냉정하게 분석해 향후 다른 국가 행사를 준비할 때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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