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발생해 울산 남구와 울주군 일대 기업, 자영업자, 가계의 활동을 마비시킨 대규모 정전의 원인이 28년 된 노후 변전시설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적자로 위기를 겪는 한국전력이 노후설비 교체를 위한 투자를 축소해 온 영향이란 분석이 나온다. 산업 발전의 필수적 요소인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한전의 재정 문제로 인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전 건수는 최근 5년간 매년 증가했다. 지난해 배전망과 관련한 정전 건수는 전년 대비 27% 증가했고, 2018년과 비교하면 84% 늘었다. 지난달 중순에는 경기 수원, 용인, 화성 등지의 전압이 뚝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해 에버랜드 놀이기구가 갑자기 멈춰 서는 일도 있었다. 전력 품질의 가늠자인 가구당 연간 정전시간 역시 재작년 8.9분에서 작년에는 9.1분으로 길어졌다. 정전이 자주 발생할 뿐 아니라, 복구 시간도 이전보다 오래 걸린다는 의미다.
게다가 전력의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한전의 투자가 줄고 있어 이런 문제는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한전의 송변전·배전 투자비는 전년 대비 5.9% 줄면서 5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또 올해 5월에는 재정위기 극복을 위해 전력시설 건설 시기를 미뤄 2026년까지 1조3000억 원을 절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설비 노후화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세계 8위 전력 소비국이다. 한국의 산업구조는 점점 더 양질의 전기를 필요로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국내에서 공격적으로 확장하고 있는 반도체 생산라인들은 전력 공급이 잠시만 끊겨도 수백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다. 인공지능(AI) 발전과 맞물려 급증하는 첨단 데이터센터는 안정적인 대규모 전력 공급이 필수다.
전기요금을 제때 못 올려 지난 3년간 쌓인 한전의 누적 적자가 45조 원, 총부채는 200조 원이 넘는다. 그런데 2036년까지 새로 투자해야 하는 송전선로 비용은 56조5000억 원이다. 이런 상태로는 전력망 투자가 제대로 진행되길 기대하기 어렵다. 블랙아웃 사태가 자주 재발할 것이란 경고도 나오고 있다. 한국의 산업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전의 경영 정상화를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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