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청장 보선-부산엑스포 유치 ‘오판’ 닮은꼴
재벌 총수 떡볶이 먹방 이벤트, 누구 작품인지
비서실장은 ‘게이트키퍼’… ‘세이 NO’ 제대로 했나
심기경호만 연연하면 게도 구럭도 다 잃고 말 것
국물 맛은 한두 술만 떠먹어 보면 아는 법이다. 국정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드러난 몇몇 사안을 보면 권부(權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대략 짐작이 가능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 후 처음으로 특정 사안에 대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했던 부산 엑스포 유치전 오판, 대통령이 “진작 상황을 알려주지 그랬느냐”고 했다는 강서구청장 보선 판세 오판 등이 단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걸까. 누가 어떻게 요리를 하기에 한번 왔던 손님도 발길을 돌리게 하는 맵고 짠 국물을 만드는가. 주방장 문제를 짚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이란 식당의 주방장은 대통령비서실장이다. 헌법상 국무총리가 내각을 총괄하도록 돼 있지만 엄연한 대통령제하에서 실질적 국정 2인자는 따로 있다. 장관을 포함한 주요 인사, 정책 조율 등이 대통령실에서 이뤄진다. 물론 현 정부에선 누가 ‘V2’인지를 놓고 세간의 평가가 다르긴 하지만….
대통령은 본질적으로 임기가 정해져 있는 ‘선출직 군주’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비서실장은 거칠게 말하면 왕명 출납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자리다. 그러나 단순히 대통령의 뜻만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아니다. 승지이자 왕사(王師)이고, 국정의 막후 조율자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책무는 정확한 정보와 냉철한 조언으로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유도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비서실장을 ‘게이트키퍼(The Gatekeeper)’라 부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윤 대통령은 자기 확신이 강한 직진 스타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호불호가 분명하고, 오랜 검사 경험 때문인 듯 선악의 이분법적 가치관도 엿보인다. 그러면서도 정(情)에 약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보좌하기 힘든 리더 유형이란 평가가 적지 않은 이유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가 처한 작금의 상황은 “비서실장도 얼마나 힘들겠느냐”고 눙치고 넘어갈 단계를 넘었다.
오판은 또 다른 오판을 부른다. 그래서 궁금하다. 대통령의 재계 총수 떡볶이 먹방 이벤트는 누가 기획한 건가. 생사의 전쟁을 치르는 재벌 총수들을 해외 순방 때마다 수행하게 하고, 엑스포 유치 지원에 투입하는 것을 두고 관폐 논란이 일고 있음을 진짜 몰랐던 건지, 알고도 뭉갠 건지…. “지금 떡볶이 이벤트 할 때 아니다”라는 고언을 아무도 하지 않은 건지, 안 된다고 했는데도 밀어붙인 건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의 술자리를 좋아하고, 흥이 나면 나이 어린 재벌 총수에겐 존칭 없이 편하게 대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누가 이런 자리를 주선하는 건가.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인사도 이어지고 있다. 어느 대사는 외교부 차관으로 승진한 지 4개월여 만에 경제 부처 장관에 발탁됐다. 대통령이 형으로 불렀다는 선배 검사는 국민권익위원장 반년 만에 업무 연관 경력이 없는 방송통신위원장 자리에 지명됐다. 소년가장, 섞박지 얘기까지 곁들여서. 장관으로 옮긴 지 석 달도 채 안 된 사람을 총선에 내보내려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심과 동떨어진 여러 일들이 반복되는 걸 보면 국정 게이트키핑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게이트키퍼는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수도 있고, 활짝 열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각종 인사, 정책 조율, 메시지 관리 등이 국민 눈높이에 맞게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몇 년 전 칼럼에서 비서실장의 덕목으로 의회를 전략적으로 다룰 능력, 대통령에게 사실을 가감 없이 보고하고 때론 ‘노’를 할 수 있는 정직함,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는 자세 등이라고 쓴 적이 있다. 지금 세 가지 덕목 중에서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세이 노(NO)’라고 본다. 말은 쉽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모르진 않는다. 김대기 실장은 스스로에게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내년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어떤 성적표를 얻을 것인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우려되는 것은 국가의 역량이 쇠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제 집권 3분의 1도 안 지났는데 일류 인재들이 국정 참여를 꺼리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벌써 인재난을 걱정한다는 건 심각한 징후다. 국정의 선순환이 아닌 악순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육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R&D 개혁 등 거창하게 선언은 했는데 실제 이뤄진 성과는 미미한 수준이다. “국민이 늘 옳다”며 변화의 제스처를 취하는 듯하더니 결국 용산도 당도 달라진 것이 없다. 변할것 같지 않은 수직적 리더십, 심기경호에 바쁜 참모들. 이러다 게도 구럭도 다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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