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무분별한 작품 학습, 작가 설 곳 사라져”… 웹툰계 공포 확산[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1일 23시 42분


만화계 ‘AI 저작권’ 논쟁
국회서 AI 학습 면책 논의에… 작가협회 “무단 사용” 반발
학습 작품 출처 표시 안 하면… “대가 요구도 못 해” 지적
작가들 “학습 범위 명시 계약해야”… 플랫폼 “적절한 윤리 기준 필요”
문체부 이달 중 가이드라인 발표

이호재 문화부 기자
이호재 문화부 기자
《인공지능(AI)은 웹툰 작가를 돕는 조수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작가의 창작물을 표절하고 작가의 일자리를 뺏는 도둑이 될 것인가.

최근 웹툰 업계에서 AI 학습 저작권 논쟁이 일고 있다. 웹툰 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AI가 작가들이 그린 작품을 무단으로 베끼고 모방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다. AI 개발사들은 AI가 어떤 작가의 그림을 학습하거나 참고했는지 출처를 밝히지 않는 경우가 많아 작가들이 ‘수업료’를 요구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앞장서서 AI 저작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고, AI 개발사와 콘텐츠 원저작자 사이의 적절한 계약을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작품 무단 활용 허용 시 작가들 치명타”
“국회에서 논의 중인 텍스트·데이터 마이닝(Text and Data Mining·TDM) 면책 규정이 무분별하게 도입될 경우 웹툰이 AI에 의해 저작권자도 모르는 새 무단으로 학습된다.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상업적 AI에 이용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는 지난달 28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 입장문을 발표했다.

TDM은 AI가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해 패턴이나 구조를 추출하는 기술이다. AI가 웹툰을 그리려면 앞서 인간 작가가 그린 기존 웹툰을 학습해야 한다. AI가 결과물을 내놓은 것을 보면 마치 새로운 창작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림체나 캐릭터 등 기존 인간 작가가 그린 작품의 독창적인 특징을 모방해 짜깁기한 것이다. TDM 면책은 AI가 저작물을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도록 저작권 침해의 책임에서 면제해주는 것을 뜻한다.

최근 AI 기업 등에선 급속히 발전하는 생성형 AI 개발을 위해 TDM에 대해서 폭넓게 면책해달라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 분석 기술을 통해 다수의 저작물을 포함한 대량의 정보를 분석”할 때 “저작물을 복제·전송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이 개정안은 특히 TDM의 허용 범위를 “저작물에 표현된 사상이나 감정을 향유하지 않는 경우에는 필요한 한도 안에서”라고 정하고 있다. AI가 학습하는 범위를 폭넓게 허용하자는 취지다.

만화가협회와 웹툰작가협회는 이 같은 규정이 작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TDM 면책 규정이 도입되면 웹툰 작가들이 경제적 손실을 입는 것은 물론이고 창작 의욕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두 협회는 “작가의 작품이 무단 복제 및 전송될 위험이 있다”며 “창작자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으로 복잡한 저작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작가들은 AI가 학습할 때 출처를 명시하지 않는다면 어떤 작품을 베끼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저작권 침해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웹툰 작가와 플랫폼 간 계약 문제를 다룬 책 ‘웹툰 작가에게 변호사 친구가 생겼다’(2020년·바다출판사)의 공저자인 김성주 변호사는 “웹툰은 작품마다 독창성이 있는 만큼 AI의 학습 대상이 되는 웹툰이 무엇인지 출처를 표기하지 않으면 무단 활용과 불법 유통을 차단할 수 없다”고 했다.

대형 플랫폼과의 계약에서 ‘을’의 위치에 있는 작가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부당한 계약을 수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혁주 한국웹툰작가협회장은 “이미 네이버가 운영하는 웹툰 플랫폼은 웹툰 작가와 계약할 때 ‘AI를 활용해 작가의 작품을 학습할 수 있다’는 규정을 넣고 있어 작가들이 궁지에 몰린 상태”라고 했다.



●“작품 표절당해도 알 수 없어”
AI가 웹툰 등에서 활용되는 것 자체는 막기 어려운 흐름이다. 네이버웹툰이 2021년 출시한 ‘AI페인터’는 웹툰 30만 장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인물의 얼굴이나 신체, 배경 등에 자연스럽게 색상을 입혀주는 기능을 갖췄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던 색칠이 간편해진 것이다. 또 명령어를 쓰면 10초 만에 이미지 여러 장을 만드는 ‘노블AI’처럼 해외에서도 여러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이 나오는 가운데 국내 기업만을 옥죌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웹툰의 AI 활용은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 5월 연재를 시작한 네이버웹툰 ‘신과 함께 돌아온 기사왕님’이다. 이 웹툰에선 배경으로 쓰인 집들의 크기가 뒤죽박죽이었다. 화풍이 컷마다 조금씩 변하고 신체 묘사가 어색해 AI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1회는 평점이 10점 만점에 2.71점을 받았다.

논란이 커지자 웹툰 제작사는 “작업 마지막 단계에서 AI를 이용한 보정 작업을 했다. 앞으로는 AI 보정 없이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가겠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독자들 사이에선 “AI 활용을 먼저 밝히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작가들도 반발했다. 한 웹툰 작가는 “웹툰 제작사가 어떤 AI를 활용했는지, AI가 어떤 작가의 작품을 학습했는지 모른다. 내 그림의 질감과 화풍처럼 수년간 노력해서 만든 작품을 학습 데이터로 사용했는지 어떻게 아느냐”고 했다.

여러 AI가 서로의 작품을 학습하기 시작하면 독창성이라는 가치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가 또 다른 AI의 작품을 학습하면 애당초 인간 작가의 작품이 바탕이 됐다는 사실이 희미해진다. 기업이 창작자들에게 동의를 얻어야 할 의무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책임도 희석될 수 있다. 한 웹툰 작가는 “그렇게 되면 인간 작가는 저작권에 대해 문제 삼기 어렵다. 창작의 핵심인 ‘독창성’이라는 것이 사라지는 셈”이라고 했다.

해외에선 AI 저작권을 둘러싼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작가조합(WGA) 소속 작가들은 올 6월 “AI는 문학(대본 창작)에 사용될 수 없고, 작가들의 작업물은 AI 학습 훈련에 쓰이면 안 된다”며 파업을 벌였다. 국내에서 분쟁이 곧 현실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성주 변호사는 “(TDM 면책) 저작권법 개정안은 AI의 데이터 수집과 학습을 어디까지 허용한다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작가와 AI 개발자 및 플랫폼 간의 소송이나 법적 분쟁이 발생할 여지가 크다”고 했다.

●문체부 “이달 중 가이드라인 발표”
AI의 저작물 무단 학습을 막고 창작자가 제대로 보상을 받으려면 적절한 계약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웹툰 작가는 “상업적 목적으로 AI를 개발하는 기업은 학습의 범위, 목적, 기간을 명시해 작가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웹툰 작가는 “네이버, 카카오는 데이터가 적절하게 쓰였는지, 기여도는 어떤지 작가가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 중 AI 학습물 저작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계획이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웹툰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AI 창작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법적 문제를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장경근 문체부 저작권정책과장은 “웹툰 등 창작 업계에서 AI를 활용하기 위해선 작가에게 허락을 받거나 적절히 보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취지가 담길 것”이라고 했다.

플랫폼 측은 정부의 가이드라인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박정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총괄 대표는 “AI를 활용한 창작에 대한 윤리 기준을 정부 부처에서 마련해주면 거기에 맞춰 준비할 수 있다. (정부 기준을) 적극 수렴해 자체 가이드를 마련할 예정”이라고 했다. 김대식 네이버웹툰 AI&Data 리드는 “정부 주도로 AI 저작물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빠르게 마련된다면 콘텐츠 업계 전반의 혼란과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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