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이준식의 한시 한 수]〈242〉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4일 23시 18분


잔설처럼 하얀 비단 조각으로, 잉어 한 쌍 만들었으니
내 맘속 일을 알고 싶다면, 그 배 속의 편지를 읽어보셔요.
(尺素如殘雪, 結為雙鯉魚. 欲知心裏事, 看取腹中書.)

―‘흰 비단 물고기를 만들어 친구에게 주다(결소어이우인·結素魚貽友人)’·이야(李冶·약 730∼784)




이야(李冶)라는 본명보다 계란(季蘭)이란 자(字)로 더 잘 알려진 여류 시인. 열 살 남짓에 출가하여 도교에 입문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당시 도사에 대한 예우가 특별한 건 없었지만 일부 권력에 가까운 도사들의 지위는 막강했다. 당 황실이 도교를 존숭하여 현종의 여동생 옥진공주(玉眞公主)가 도사로 출가할 정도였고, 이백이 벼슬을 얻기 위해 한때 두보와 함께 유명 도사를 찾아가 교분을 쌓기도 하는 등 도교의 사회적 지위는 상당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대부 집안에서 미혼의 딸을 도관(道觀)으로 내보내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야의 부친은 남다른 재능을 보인 딸이 지나치게 활달하고 자유분방하여 세상에서의 삶이 비뚜로 되지 않을까 염려하여 수행자의 길을 걷게 했다고 한다. 과연 출가 후 그녀는 도사로서의 수행 못지않게 당대 명사들과의 교류도 빈번하게 이어갔다.

그녀가 ‘내 맘속 일’을 한번 읽어보라는 시와 함께 편지를 보낸 상대는 당대의 유명한 승려 시인 교연(皎然). 평소 서로 시문을 주고받기도 하고 내왕이 잦았던 사이긴 했지만, 뜻밖의 연서를 받은 스님의 반응은 어땠을까. ‘천상의 여인 나를 떠보려고, 꽃으로 내 옷을 물들이려 하시네/불도를 수양하는 이 마음 흔들리지 않으리니, 지난번 꽃은 돌려드리리다.’(이계란에게 답하다·答李季蘭) 여도사가 편지 속에서 어떻게 사모의 정을 표현했는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하나 둘 사이가 무덤덤한 관계려니 방심했을 스님의 답시에는 제법 재치와 운치가 엿보인다.

#연서#흰 비단#물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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