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5년간의 건강보험 정책 방향을 담은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년)의 발표를 앞두고 있다. 향후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 추진에 귀추가 주목되는데,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기간부터 주요하게 제시한 보건의료 공약이 있다.
바로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보장성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으로, 정책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를 위해 신약이 신속하게 등재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고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 확대 등에 재정을 적극 투입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힘든 투병 과정으로 몸도 마음도 지친 환자들에게 실낱 같은 희망이 되었던 이 약속은 현재 지켜지고 있을까.
중증·희귀질환 치료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치료수단 중 하나는 단연 혁신 신약이다. 과거 치료법이 없던 질환들도 효과와 안전성이 입증된 신약의 등장과 함께 완치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신약의 치료 기회가 환자들에게 제대로 제공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에 출시된 치료제가 국내에서 허가를 받고 급여권까지 안착되어야 한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글로벌에서 처음 출시된 후 한국에 1년 안에 진입하는 신약은 비급여 도입을 기준으로 해도 5%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신약 도입률이 18%, 일본 32%에 비하면 한국은 후진국인 셈이다. 여기에 한국에서 신약이 급여를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평균 약 46개월이라는 통계를 반영하면 한국 환자들은 건강보험 급여를 통해 실제 신약 치료를 받기까지 4년 가까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이미 한국의 신약 도입 속도가 국제적으로도 뒤처진 상황에서, 최근 재정 절감에만 초점을 둔 정부의 약가제도 정책이 국내 환자들의 치료 보장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으로 우려된다. 신약이 개발됐을 경우 국내 희귀질환 환자들에게 신약 급여는 가장 필수적인 요소다. 하지만 정부는 신약에 대해 난도 높은 허가 과정뿐 아니라 반복적인 약가 사후관리 제도를 적용해 끝없이 가격을 인하시키고 있다. 당장 내년 1월부터 실거래가 인하, 급여적정성 재평가 등의 ‘약가 인하’ 정책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정부에서는 추가적인 제도 강화를 예고해 업계와 환자들의 우려가 크다.
거듭되는 약가 인하로 인해 외국계 제약사들이 신약 출시국에서 한국을 제외해 버리는 일명 ‘코리아 패싱’도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글로벌 론칭 신약 중 한국보다는 중국에 먼저 론칭되는 신약이 늘고 있다. 내년부터 대만에서 한국 약가 참조를 계획하고 있어, 신약의 한국 론칭이 점점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한국의 약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의 약가를 참조해 자국 약가를 매기는 주변국들이 생기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은 낮은 약가 정책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다. 30여 곳의 외국계 제약사 관계자를 설문조사한 결과 한국의 약가 제도로 인해 본사 차원에서 코리아 패싱을 고려한 적 있냐는 질문에 76%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더 이상 한국에서의 신약 출시가 보장된다고 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시한폭탄’ 같은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정부는 이런 제도적 방향에 대해 고가 신약의 가격 관리를 통한 재정 절감을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국내 건강보험 지출 구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최근 10년간(2012∼2021년) 국내에 급여 적용된 227개 신약이 건강보험 재정에서 차지하는 지출은 총 약품비 대비 8.5%, 전체 진료비의 2.1%에 불과하다. 또한 중증질환 분류에 따른 신약 재정 영향을 분석했을 때도 중증·희귀질환(암, 희귀질환) 신약에 쓰인 약품비는 전체 약품비의 3.3%다. 보건 분야 싱크탱크 미래건강네트워크가 올해 국민 5000명 이상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85%가 경증질환보다 중증질환 중심으로 필수의료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90% 가까이가 암, 희귀질환 등 중증질환 신약에 대해 건강보험을 신속히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증·희귀질환 환자의 치료 보장성 및 신약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바로 지금, 건강보험 제도가 신약 가치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편될 수 있도록 정부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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