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3각 협력은 윤석열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가장 앞에 내세우는 정책 기조이자 성과 중 하나다. 윤 대통령은 올해에만 4차례 미국을 방문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는 7차례 정상회담을 가졌다. 8월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는 한미일 정상이 3각 협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회동으로 평가받는다.
기자는 최근 주한 미국대사관이 초청한 ‘한일 공동 취재단’에 참여해 미 워싱턴 등에서 미 정부 관료와 상·하원의원, 싱크탱크 관계자 등까지 두루 만날 기회가 있었다. 이들에게 한미일 협력에 영향을 끼칠 만한 미래 변수에 대해 물었다. 한일 역사 문제나 북핵 위협, 북-중-러 공조 등이 언급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답변의 첫마디는 대체로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됐다. ‘트럼프 변수.’ 내년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앞선다. 그런 트럼프의 재집권 여부가 한미일 공조의 핵심 변수가 될 거란 얘기였다.
일단 미 인사들은 트럼프의 귀환이 큰 틀에서 한미일 공조 자체를 흔들긴 어려울 것이라 봤다. 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는 “내년 한국 총선이나 미 대선 결과 (정권 교체 등) 어떤 변화가 생겨도 3국 협력의 큰 틀이 흔들리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트럼프 행정부 당시 주일 미국대사를 지낸 빌 해거티 상원의원 역시 “트럼프는 한미일 협력을 계속해 나갈 뜻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집권 시 지금의 한미일 정상이 다져온 3국 공조의 방향이나 속도가 일부 바뀔 것이란 의견엔 동의하는 인사가 많았다. 미 정부 인사는 “트럼프가 백악관에 오면 바이든 행정부가 정리한 한미일 공조 내용을 일단 분야·항목별로 나눠 계산기부터 두드려 보지 않겠느냐”며 “일부 내용에 조건을 붙이거나 속도에 제동을 걸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올해 한미일 협력의 틀이 된 대북 공조의 방향까지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런 우려 섞인 관측을 반영하듯 트럼프가 북한 핵무기 보유 용인을 전제로 한 ‘거래’를 집권 후 대북 정책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미 매체의 보도도 13일 나왔다.
미 대선이란 정치적 변수에 앞서 한미일 공조를 안정화할 방법은 없을까. 미 인사들은 ‘제도화’를 우선 언급했다. 한미가 핵협의그룹을 발족해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틀을 마련한 것처럼 한미일도 선언적 협력을 뛰어넘는, 당장 작동할 제도적 장치들부터 많이 마련해둬야 한다는 얘기였다.
제도화 범위 자체를 넓힐 필요성도 제기됐다. 안보·경제협력이 중심이 된 현재 한미일 공조 수준을 넘어 다층적으로 밀도 있게 제도화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다. 제도화 틀 안에 둬야 하는 분야로는 사이버와 우주 탐사, 환경·에너지 등은 물론이고 양자컴퓨팅 등 첨단 기술까지 언급됐다.
‘트럼프 변수’가 부담되면 ‘차이나 변수’부터 활용하란 조언도 나왔다. 중국을 겨냥해선 바이든 못지않게 트럼프 역시 강경한 펀치를 휘두를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런 만큼 안보·공급망이든 가짜뉴스 대응이든 대중국 이슈에 대해선 한미일이 고위급에서 실무진까지 지금부터 확실한 공조체제를 구축해둬야 한다는 얘기였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