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대중 무역수지가 31년 만에 처음 적자를 낼 전망이다. 중국에 파는 대표상품 반도체 수출은 줄어든 대신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2차전지 부품·소재 등의 수입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간 ‘반도체 착시’에 가려져 있었을 뿐, 중국의 산업 경쟁력이 한국을 급속히 따라잡아 팔 수 있는 상품이 줄어든 게 근본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무역적자를 내는 건 수교 첫해인 1992년 10억 달러 이후 처음이다. 중국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거의 매년 한국이 무역으로 최대 흑자를 낸 나라였다. 하지만 올해는 11월까지 한 달도 빠짐없이 적자를 내면서 누적 적자가 180억 달러로 커졌다. 수출이 다소 개선된 12월을 포함해도 연간 적자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의 대중 무역적자는 고금리로 인한 선진국의 소비 위축과 중국의 내수 침체가 겹치면서 중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산 제품을 덜 사 간 영향이 있다. 하지만 중국산 중간재가 한국산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게 더 큰 이유다. 2025년까지 핵심 부품, 재료 대부분을 자국산으로 바꾸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 내수 중심으로 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쌍순환 전략’을 중국이 추진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내구소비재도 중국 시장에서 맥 못 추는 건 마찬가지다. 10년 전까지 20%의 시장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던 삼성전자 휴대전화는 중국 기업들에 밀려 지금은 점유율이 1% 안팎이다. 2016년 178만 대였던 현대차·기아의 중국 시장 판매대수는 사드 사태 이후 급감해 작년엔 35만 대 수준까지 줄었다. 반면 한국 2차전지 산업은 핵심 소재·광물 공급 대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고, 비중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대중 수출과 관련해 ‘중국인 한 명당 1개씩 팔아도 14억 개’ 식의 주먹구구식 기대는 낡은 환상에 불과하다. 한국은행도 중국의 중간재 자립도 상승, 기술 경쟁력 제고로 우리 경제가 과거와 같은 중국 특수를 다시 누리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첨단 산업에 집중 투자해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부가가치 서비스 수출을 늘리면서 인도·동남아 등지로 시장을 넓히지 못하면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한국의 설 자리는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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