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직 시인이 이 시를 ‘문장’지에 발표했을 때가 1940년이었다. 유망한 청년 시인이 등장하자 정지용은 “젊고도 슬프고 어리고도 미소할 만한 기지를 갖춘 당신”이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작품 수가 적고 활동한 기간이 길지 않아 지금은 전집 하나 남지 않았지만 이한직의 초기 시는 분명 눈부셨다. 일견 어두운 내용 같아 보이지만 죽고 싶다는 절망감보다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표표히 떠나고 싶다는 자유로움을 표현했다. 열아홉에 이런 시정이라니, 문단의 기대를 받을 법도 했다.
사실 이 작품의 배경은 지금 계절에 어울리지는 않는다. 높새는 봄에서 여름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고 하니, 추워진 겨울의 소재는 아닌 것이다. 그렇지만 장마가 나오는 시를 여름에만 읽고 눈이 나오는 시를 겨울에만 읽으라는 법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는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느 때든 읽기 좋은 작품이다. 연말이 다가오면 우리는 묵은 감정을 다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기, 올해를 떠나서 거기, 다음 해에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심정이다. 버릴 건 버려야 새해 새 마음이 오는 법. 부는 바람에 모든 것을 날려버리려는 시의 심정은 지금 이때에 꼭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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