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17% 찍은 日 기시다 [횡설수설/김승련]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5일 23시 51분


일본인이 뽑은 올해의 한자는 ‘세(稅)’였다. 증세와 감세가 뒤섞인 정책이 일본인 마음을 흔들었다는 뜻이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방위비 증액과 저출산 대책을 위해 세금 인상을 공언해 왔다.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그러다가 10월 들어 “더 걷은 세금을 돌려 준다”며 난데없이 감세 정책을 꺼냈다. 이게 역풍을 맞았다. 총리가 내년에 있을지 모를 총선을 앞두고 “인기에 영합한다”는 이유였다. 5월만 해도 50% 선이던 지지율은 어제 공개된 지지(時事)통신 조사에선 17.1%까지 추락했다. 이 숫자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결정타는 총리 취임 2년을 넘기며 터진 자민당 파벌 비자금 사건이었다. 아베파(派)는 후원금 모금을 위해 기업이나 단체에 파는 행사 티켓(20만 엔·180만 원)을 의원 1인당 50장씩 할당했다. 할당량보다 더 팔면 의원들이 갖도록 했는데, 이렇게 챙겨둔 돈 45억 원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게 도쿄지검 특수부가 보는 혐의다. 여론이 나빠지자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 등 장관 4명을 경질했고, 부대신 5명도 교체를 예고했다. 9명 모두 아베파 소속이다.

▷기시다 총리가 아베 파벌 색깔 지우기에 나섰지만 결국은 제 발등 찍기에 가깝다. 이들 도움 없이는 총리직 지탱이 어렵다. 당내 역학관계가 그렇다. 기시다파는 아베파(의원 99명)에 비해 한참 모자란 4번째 파벌(45명 전후)이다. ‘아베시다 정권’이란 별칭에서 보듯 총리 이름이 오히려 뒤에 붙었다. 총리가 주도자가 아니란 뜻이다. 그가 내세운 ‘한국과 중국에는 엄격히’ 구호도 강경한 아베파를 의식한 것이었다.

▷자민당은 1955년 출범한 뒤로 64년 가까이 통치했고, 4년만 야당이었다. 민주국가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정권교체란 파벌끼리 권력 넘겨주기와 동의어가 됐다. 그만큼 쉽다 보니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단명(短命) 총리가 속출했다. 아베(1년), 후쿠다(11개월), 아소(1년), 하토야마(8개월), 간 나오토(15개월), 노다(16개월), 2번째 아베(7년 8개월), 스가(1년)…. 거대 계파의 확실한 리더(작고한 아베 전 총리)만 예외였다.

▷소수파 리더인 기시다 총리는 스캔들을 견뎌낼까. 당내 경쟁자는 용퇴론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당 기반도 약한데, 지지율은 바닥이다. 기시다 총리가 출산율 제고, 반도체 등 첨단산업 회생, 방위력 증강처럼 장기간 뒷심이 필요한 정책을 주도해 내기란 기대 난망이다. 신냉전시대를 맞은 지금 한미일 3각 협력은 더없이 중요해졌다. 3국 지도자의 위상과 협력 고리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고령의 바이든이 치를 내년 대선도 변수고, 자민당 내 온건파인 기시다도 휘청이고 있다. 우리만 고비를 맞은 게 아니다.

#지지율 17%#기시다 총리#자민당 파벌 비자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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