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된 트럼프發 ‘북핵 드라마’ [특파원칼럼/문병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7일 23시 50분


美 비관론 확산 속 나온 북핵 용인설
‘트럼프 리스크’ 기회로 바꿀 대담함 필요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면서 ‘트럼프 현상’이 다시 미국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 현상은 극단적 발언으로 논쟁을 일으켜 여론을 단숨에 집중시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트럼프 현상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할 것이라는 이른바 ‘북핵 용인설’로 불거진 논쟁들은 한반도가 트럼프 현상의 또 다른 최전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3일(현지 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동결하고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면 대북 경제 제재를 완화하고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핵 동결을 뼈대로 한 비핵화 협상 구상은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다. 핵시설 폐기 등 본격적인 비핵화 조치가 이뤄지기 전 경제제재 해제 등 우려할 만한 대목도 없지 않지만,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면 제재를 부활시키는 이른바 ‘스냅백(Snapback)’ 조항 등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핵 동결 협상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암묵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대목이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직접 소셜미디어에 “민주당 공작원들이 지어낸 허위 정보”라고 반박할 만큼 미국 내에서도 폭발력이 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일축에도 미국 내에 광범위하게 퍼진 북한 비핵화 비관론을 고려하면 현실성이 낮지 않은 얘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토록 바랐던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자 북한은 이미 핵 포기 불가를 선언하고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로 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있다. 그런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가 지원하고 나서는데도 속수무책인 상황이 이어지며 미국에선 ‘이제 도대체 무슨 수로 북한의 핵을 포기시키느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미국의 한 전직 당국자는 “앞으로 북한이 더 이상 미국과 대화하려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한 적이 있다”며 “미국의 협상 레버리지(지렛대)가 떨어진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라고 했다.

대선 유세의 단골 레퍼토리로 북-미 정상회담을 자랑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측도 비핵화 비관론에선 예외가 아니다. 트럼프 재집권 시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미연구소(ICAS) 대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빌 클린턴 행정부가 북한 핵 개발을 저지할 마지막 최고의 기회를 흘려보낸 뒤 미국의 어떤 행정부도 비핵화 목표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재집권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주 앉으려면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 때보다 더한 파격이 필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트럼프 2기로 다시 시작될 ‘북핵 드라마’에 과장된 공포심을 갖는 것도 금물이다. 일각에선 사업가 시절부터 시작된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한국의 악연을 거론하며 ‘코리아 패싱’을 걱정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한미관계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일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1기 당시 한미일 협력, 중국 견제 등을 두고 문재인 정부와의 이견으로 갈등이 있었을 뿐 윤석열 행정부와의 ‘케미’는 다를 것이라는 주장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파격 행보가 북-중-러 신냉전 구도에 균열을 일으키거나, 남북 간 핵 불균형을 완화하는 등 한국에 예상치 못한 기회의 문을 열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트럼프발 북핵 드라마의 예고편은 더 자주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 정해진 결말은 없다. ‘새드 엔딩’을 바꿀 대담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다.

#미국#트럼프#대통령#특파원칼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