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앞두고 한국 대사를 초치했다는 국내 언론 보도가 나왔다. 네덜란드 측이 최형찬 주네덜란드 대사를 불러 경호와 의전에 대한 한국의 요구에 ‘우려와 당부’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는 한국이 경호에 필요하다며 방문지 엘리베이터 면적 같은 정보까지 달라고 한 것, 반도체 장비기업 ASML의 기밀 시설인 ‘클린룸’에 제한된 인원수 이상의 방문을 요구한 것 등을 조목조목 열거했다고 한다.
▷‘초치(招致)’는 한 국가의 외교 당국이 상대국에 주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항의하기 위해 상대국 대사를 불러들이는 것으로, 부정적 뉘앙스가 강하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을 놓고 우리 외교부가 가장 먼저 내놓는 대응이 일본 대사 초치다. 네덜란드 측이 한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불과 열흘 앞두고 최 대사를 초치한 것은 그만큼 준비 과정에서 인식한 문제가 가볍지 않았다는 의미다. “소통의 일환”이었다는 외교부의 해명은 군색하다.
▷윤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1961년 양국 수교 이후 첫 국빈 방문이었다. 네덜란드는 윤 대통령이 탄 비행기에 자국 F-35 전투기 2대를 붙여 호위했고 붉은 카펫과 21발의 예포, 화려한 왕실 만찬 등으로 극진히 예우했다. 분 단위로 움직이는 순서와 타이밍, 동선, 외교 프로토콜을 놓고 초긴장 상태의 신경전도 벌어졌을 것이다. 그럴수록 상대국을 존중해 가며 세부 사항들을 매끄럽게 조율해 내야 하는 것이 외교다. ‘정상 외교의 꽃’이라는 의전에서 잡음이 불거진 것은 이런 기본이 흔들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 의전비서관의 잦은 교체와 공백은 상황을 악화시킨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올해 3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블랙핑크 공연을 둘러싼 논란 속에 의전비서관이 사실상 경질됐고, 이벤트 대행회사 대표 출신으로 자질 시비가 붙은 후임자는 약 6개월 만에 자녀의 학교폭력 문제로 사퇴했다. 지난달 임명된 신임 의전비서관 역시 외교와 의전 경험이 전무하다. 비(非)전문성에 과잉 충성심이 덧대어지면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은 아닌지 복기해 볼 일이다.
▷단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의전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라고 한다. 빈틈이 있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상대국을 당혹하게 하는 요구들을 지나치게 밀어붙였다간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우를 범할 우려가 있다. 가뜩이나 해외 순방에서 제기된 윤 대통령의 의전 관련 논란들이 누적돼 온 상황이다. 취임 후 16번째인 해외 방문 횟수와 578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놓고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부가 내세우는 정상외교의 성과마저 이런 문제들에 묻히고 빛바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국가적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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