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전기차 명단에서 기아의 니로, 쏘울을 제외했다. 한국차 중에선 현대차 코나만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유럽 시장을 파고드는 중국산 전기차를 견제하기 위한 보호무역 조치에 한국 기업이 피해 보는 상황이 벌어졌다.
지난주 프랑스는 ‘프랑스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으로 불리는 녹색산업법의 시행에 들어갔다. 전기차 원자재 확보, 생산, 운송 등 전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점수로 매기고 기준을 넘는 전기차에만 대당 보조금 700만∼1000만 원을 주는 내용이다. 배로 차를 실어 나를 때 배출하는 탄소까지 반영하기 때문에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일수록 불리하다.
이에 따라 전기차 78종이 지원 대상에 선정됐다. 70%가 프랑스, 독일 브랜드 전기차다. 중국산은 1종도 없고, 일본차는 6종, 미국산은 테슬라 1종뿐이었다. 한국차 중 현대차 코나가 유일하게 포함된 건 체코 공장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니로와 쏘울은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다. 보조금을 못 받는 전기차는 향후 현지 시장에서 경쟁하기 어렵다. 유럽에선 유럽산만 판매하라는 ‘전기차 보호주의 선언’이나 다름없다.
당장 기아가 타격을 받게 됐다. 올 들어 10월까지 프랑스에서 팔린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12만6000대로 작년 동기 대비 5.8% 늘었다. 기아차 비중이 이 중 절반 이상이다. 이제 와서 한국 통상당국은 프랑스 측에 이의를 제기하고, 탈락 차종의 재평가를 요구하겠다고 하지만 한국차만 열외를 인정받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아는 슬로바키아 내연기관차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해 대응할 방침인데, 라인 전환에 막대한 돈과 몇 년의 시간이 든다.
한국 전기차업체, 2차전지 기업들은 그동안 미국 IRA에 맞춰 대미 투자, 현지공장 설립 확대에 모든 신경을 집중해 왔다. 프랑스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치로 방심하고 있던 유럽 시장에서 불의의 일격을 맞았다. 중국 지분 25%가 넘는 한중 합작기업이 생산한 배터리에 보조금을 주지 않겠다는 이달 초 미국 정부의 결정에 잇따른 충격이다.
자유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배타적 보호주의 움직임이 유럽 다른 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어느 지역으로든 번질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쌓아올리는 무역장벽 앞에서 ‘수출 한국’이 산업화 이후 최대 도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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