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되는 층간소음 대책
다 지은 아파트 층간소음 검사해… 기준 미달하면 준공 허가 안 내줘
건설사 “바닥 공사비 2배 늘어”… “벽간소음 어떻게 막나” 우려도
60%가 아파트… 민원 年4만 건… “주민 자율 갈등 해결 시스템 필요”
《최근 ‘층간 소음 보복’도 스토킹 범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빌라에서 특정 도구로 새벽에 천장을 두드리고 윗집을 향해 스피커로 노래를 트는가 하면 고함을 지르는 등 31차례에 걸쳐 소음을 낸 사람에 대해 대법원은 윗집 거주자가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거주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한국 사회에서 층간소음이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가 접수한 층간소음 민원은 지난해 4만393건으로 2020년(4만2250건), 2021년(4만6596건)에 이어 3년 연속 4만 건을 넘었다. 층간소음에서 비롯된 살인, 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발생 건수는 2016년 11건에서 2021년 110건으로 10배로 급증했다.
정부가 최근 층간소음을 막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것도 층간소음이 사회 문제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아파트를 지었는데 층간소음이 기준치를 충족하지 않으면 준공 허가가 나지 않고, 거기서 생긴 입주 지체 보상금과 각종 금융 비용 등은 건설사가 부담해야 할 몫이 되면서 건설사들은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층간소음을 막기 위한 건설사 책임이 강화됐지만 그만큼 공사비나 분양가가 상승할 것이란 전망부터 옆집에서 발생하는 ‘벽간소음(측간소음)’ 등 다른 소음을 막을 수 있는지에 이르기까지 각종 우려가 적지 않다. 층간소음 전문가들은 층간소음을 실질적으로 줄이려면 △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 지원 및 인센티브 △층간소음관리위원회 등 주민 자치 강화 등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 “층간소음 막아라” 건설사들, 발등의 불
정부가 층간소음을 막기 위한 강력한 대책을 내놓은 것은 지난해 8월 시행된 층간소음 사후확인제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다. 사후확인제는 아파트를 지은 뒤 실제 아파트에서 표본을 뽑아 층간소음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당시엔 층간소음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도 보완공사가 권고에 그쳐 사실상 건설사를 제재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번에 보완공사가 의무화된 것이다. 이는 주택법 개정이 필요한데, 법 개정 이후 사업계획을 승인받은 단지가 대상이 될 경우 3∼4년 뒤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후확인제에 이어 보완시공 의무화까지 규정이 대폭 강화되면서 건설업계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시행되면서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현대건설 등은 층간소음 연구를 위한 별도 연구소를 열었다. 삼성물산은 경량충격음과 중량충격음 1등급 인증을 받은 바닥 구조를 개발했다. 현대건설의 경우 고성능 완충재를 넣은 층간소음 제어 바닥 시스템을 만들었다. 대우건설이나 DL이앤씨, GS건설 등도 각자 새로운 바닥 구조를 고안해 특허를 내거나 연구기관에서 성능인증을 받기도 했다.
● 바닥 두껍게 지으며 분양가 상승분 전가 우려까지
건설업계에서는 실제 층간소음 사후확인제가 정착하고 보완시공 의무화가 현실화해도 층간소음을 제거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적지 않다. 새로운 바닥 구조로 아파트를 짓더라도 현장에서 시공 품질이 완벽하지 않은 경우 층간소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벽식 구조가 대부분인 한국 아파트에서는 대각선, 아래, 옆 등 다양한 방향으로 번지는 ‘측간소음’이 많은데, 이 경우 어느 가구가 문제인지를 확인하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도 있다.
공사비가 올라갈 거라는 우려가 가장 크다. 만약 바닥 두께를 층마다 90mm씩 두껍게 할 경우 30층 아파트 중 1, 2개 층을 짓지 못한다. 바닥을 두껍게 하기 위해 원자재는 더 많이 들어가는데 수익은 줄어드니 그만큼 분양가에 전가돼 소비자 부담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우려를 고려해 정부는 바닥 두께를 210mm에서 250mm로 강화하면 높이 제한을 완화한다는 법안을 냈지만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법안 통과 시기가 불분명하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바닥충격음 차단 최소 성능 기준이 최초로 시행된 2004년이나 바닥 두께 기준이 180mm에서 210mm로 강화됐던 2013년 이후 가구당 분양가가 2∼3년 사이 500만 원가량 올랐다”며 “당시보다 물가가 올랐고 최근 원자재값, 인건비까지 급등해 제도 시행 3∼4년 사이 가구당 최대 2500만 원까지 분양가 상승 압력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바닥 공사 비용이 2배 정도 인상될 걸로 예상되고, 연구개발(R&D) 비용도 별도로 반영해야 한다”며 “그나마도 중소·중견건설사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음 측정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지난해 5월 국회입법조사처는 “무작위로 표본 가구를 추출해 측정하는 방식은 동일한 평면 및 위치에서도 성능 검사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강규수 소음진동피해예방시민모임 대표는 “현재의 측정 방식인 ‘임팩트볼 방식’은 충격력 자체가 약해 제대로 된 소음 측정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임팩트볼이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을 받은 방식으로, 사람이 걷는 소리와 가장 유사해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 10채 중 6채는 아파트…“갈등 해소 시스템 필요”
전문가들은 시공 품질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층간소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이미 지어진 아파트의 층간소음 문제도 시공 품질 개선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사후적으로 주민 간 협의체 등을 통해 층간소음 갈등을 해소할 수 있도록 주거문화 자체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주택 종류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64.0%다. 2016년(60.1%) 이후 집 10채 중 6채는 아파트일 정도로 아파트 거주율이 높다. 그만큼 층간소음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의미다. 한국환경공단에 따르면 층간소음의 평균 크기는 38dB(데시벨)로 교통소음(58dB)의 100분의 1 이하다. 절대적인 크기가 작지만 사람에 따라 거슬리는 소음의 종류나 크기가 달라 심각한 문제가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여전히 층간소음 갈등 해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에 2만7773건의 민원이 접수됐지만 실제 소음 측정까지 이뤄진 건 1032건(3.7%)에 불과했다. 방문 상담도 2699건(9.7%)으로 10곳 중 1곳에 그쳤다.
이 때문에 주민 자치 기구를 통한 원만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해 사후확인제를 실시하면서 층간소음관리위원회를 각 아파트 단지마다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했다. 법 시행 전 관리위원회를 만든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에서는 2020년 층간소음으로 민원이 발생하자 관리위 차원에서 다자 면담과 중재 등을 진행해 갈등을 해소하기도 했다. 차상곤 소장은 “시공 품질이 높아져도 인위적으로 내는 소음은 완전히 차단하기가 어렵다”며 “주거문화를 바꾸고 갈등 해소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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