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국화의 ‘영광의 시대’는 너무 짧게 끝나버렸다. 들국화 1집은 발표와 함께 명반의 자리에 등극했다. 최성원과 조덕환, 전인권이 만든 곡들은 각기 다른 매력이 있었고, 동시에 한 장의 앨범 안에서 완벽하게 맞물렸다. 하지만 원년 기타리스트이자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와 ‘세계로 가는 기차’의 작곡가인 조덕환은 들국화 1집을 발표하자마자 밴드를 떠났다.
테크닉이 부족했던 조덕환의 자리에 좀 더 기능적으로 기타 연주를 잘하는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자리했지만, 음악은 기술로만 하는 게 아니었다. 들국화를 아꼈던 따로 또 같이의 리더 이주원은 뛰어난 음악적 성정을 가지고 있던 조덕환이 밴드를 떠나면서 ‘본래의 빛남’은 이미 깨졌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조덕환의 빈자리를 메우지 못한 채 발표한 들국화 2집은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다. 물론 이 평가에 나도 동의한다. ‘제발’이나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 같은 좋은 노래도 있지만 앨범 전체적으론 소품집에 가까운 앨범이었다. 폭발력은 없었고, 1집의 뜨겁던 에너지는 어느샌가 휘발돼 있었다. 그럼에도 1년에 한 번 정도씩은 이 앨범을 LP장에서 꺼낼 때가 있다. 찬 바람이 불고, 첫눈이 올 때쯤, 딱 이맘때다.
이유는 단 하나, ‘또다시 크리스마스’라는 노래 때문이다. 드럼 연주자 주찬권이 만든 노래다. 주찬권은 빼어난 재능을 가진 음악인이었지만 많이 알려지진 못했다. 그는 모든 악기를 다 다룰 줄 알고, 작사·작곡에도 능했다. 솔로 앨범만 여섯 장을 낸 아티스트이지만 온전히 평가받지 못한 채 들국화의 드러머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또다시 크리스마스’는 그런 곡의 주인과 똑 닮아 있다. 노래는 음악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훌륭하지만 앨범에서 다른 노래들에 가려졌다. 모두를 아우르던 그의 인품처럼 노래는 리드 보컬 없이 멤버들이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흥겹게 부른다.
그 어떤 크리스마스 캐럴의 고전과 견주어도 좋을 시즌송이다. ‘White Christmas’와 ‘Jingle Bells’ 사이에 이 노래가 있다 해도 어떤 위화감도 들지 않는다. 이 좋은 겨울노래를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알리고 싶은 마음이 이 원고를 쓰게 하고 있다. 자연스레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노래다. 크리스마스의 들뜬 분위기와 한 해를 보내는 연말의 차분하고 아쉬운 정서가 하나의 곡 안에 공존한다.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설레는 마음’과 함께 크리스마스가 또 돌아오면 ‘지난 추억’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누구나 ‘따스한 사랑’을 찾는다. 노래가 처음 발표된 37년 전의 마음과 지금의 마음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이름 모를 골목에선 슬픔도 많지만 / 어디에나 소리 없이 사랑은 내리네”라는 가사는 주찬권의 성정을 생각하기에, 또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누군가에겐 ‘발견’이라 부를 만한 무명의 노래지만, 당장 고전이 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이 계절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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