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이론’은 1970년 일본의 로봇 공학자가 내놓은 개념이다. 로봇, 인공지능(AI) 등의 존재가 인간과 비슷해질수록 사람들의 호감도는 상승하는데, 닮은 정도가 특정 수위에 도달하는 순간 불쾌한 감정으로 급변해 골짜기에 추락하듯 호감 수준이 뚝 떨어진다는 거다. 언캐니란 말은 뭔지 정확히 꼬집어 설명하긴 어렵지만, 괴이쩍고 불편한 느낌을 뜻한다.
이달 초 윤석열 대통령이 부산 국제시장에서 대기업 오너들을 병풍처럼 세우고 찍은 떡볶이 먹방 사진에서 많은 이들이 이런 느낌을 받았다. 선거철에 정치인이 전통시장을 찾아 떡볶이, 오뎅(어묵) 먹방을 찍는 건 흔한 일이다. 대기업 오너라고 글로벌 푸드가 된 떡볶이를 싫어할 리도 없다. 가난한 집 딸과 사랑에 빠진 재벌 2세가 “떡볶이 처음 먹어 본다”며 감탄하는 표정을 짓는 건 드라마에나 나오는 얘기다. 그런데 이 장면은 뭔가 대단히 불편했다.
많은 이들이 나름대로 불편한 이유를 댔다. 엄혹한 대내외 경제 상황에 맞춰 신년 경영계획 세우기도 바쁜 글로벌 기업 총수들을 정치 행사에 동원한 데 대한 비판이 다수다. 엑스포 유치전에 그토록 대기업을 끌고 다녀놓고, 실패를 수습하는 자리에까지 동원한 건 너무하다는 거다. 부하 직원들은 싫어하는 억지 회식 자리를 만들고, “고생했는데 풀어줘야지”라며 노래방에 끌고 가 혼자 노래 부르는 직장 상사를 보는 것 같다는 이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2015년 1월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 장면이 떠올랐다. 취임 2년이 다 됐을 때지만 기자의 즉석 질의를 허용한 회견으로는 겨우 두 번째였다. ‘장관들과 대면보고를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박 대통령은 뒷줄에 앉은 국무위원들을 돌아보며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박 대통령식의 썰렁한 농담이었을 텐데, 잠깐의 정적이 지난 후 장관들이 멋쩍게 따라 웃었다.
소통 부족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때였다. 앞서 “밤낮으로 대통령 전화를 받지만, 먼저 대통령에게 전화하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란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앞으로는 열심히 만나겠다”는 한마디로 국민의 염려를 덜어줄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냐”고 물었고, 지켜본 많은 국민은 ‘바꿀 생각이 없구나’라고 직감으로 느꼈다. 박 대통령은 기억도 못 할 이 짧은 장면이 이듬해 탄핵 사태의 작은 조짐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말 엑스포 유치전에서 큰 표 차로 패배한 직후 윤 대통령은 “모든 것은 저의 부족”이라며 국정 변화를 예고했다.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면 최소한의 인원만으로 부산을 찾아 시민들의 마음을 다독였어야 했다. 하지만 대신 그는 부자연스러운 먹방 사진을 찍었다. 1년 이상 함께 고생하며 지구를 400바퀴 넘게 돈 대기업 총수들에게 ‘쫑파티’라도 해주고 싶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본 많은 국민은 ‘달라지는 게 아닌 모양이다’라고 느꼈다.
현실이 갑갑하고 돌파구가 보이지 않을 때 국민들은 국가의 리더인 대통령의 말과 행동에서 변화의 단초를 찾길 원한다. 이런 때 나오는 기대와 전혀 다른 발언, 몸짓 하나하나는 국민과 대통령 사이에 메우기 힘든 깊은 간극을 만들 수 있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35번 강조한 ‘자유’와 거리가 먼 비시장적 물가관리 정책과 날로 강화되는 금융관치, 연일 미래세대를 걱정하는 대통령 발언과 달리 무책임하게 국회에 내던져진 연금개혁 때문에 그런 골짜기는 더 깊어지고 있다. 대통령 자신부터 심각성을 깨닫고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넘어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