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앞두고 크리스마스카드 같은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크 화가 조르주 드 라투르의 ‘목동들의 경배’다. 그림 한가운데 아기 예수가 누워 평화롭게 잠자고 있고, 그 주변을 다섯 명의 인물들이 빙 둘러싸고 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캐럴을 연상시킨다고 할 만큼 차분한 밤 풍경이 인상적이다.
라투르는 약 400년 전 프랑스 로렌 지방에서 주로 활동했다. 밤의 효과를 잘 그린 화가로 알려졌는데 이같이 성탄 장면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기량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주제의 종교화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중앙에 놓인 촛불 하나가 빛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이 촛불을 오른쪽에서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노인은 성 요셉이고, 맞은편에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은 성모 마리아로 보인다. 가운데 세 명은 밤새 양 떼를 지키다 천사로부터 구세주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목동들이다. 신 스틸러는 아기 예수 옆에 앙증맞게 머리를 내미는 어린 양이다. 천진난만하게 풀을 뜯고 있는 귀여운 양 덕분에 우리는 여기가 마구간이라는 걸 잊지 않게 되고, 동시에 제단에 바쳐질 양처럼 구세주가 앞으로 겪을 희생을 묵상하게 된다. 예수의 수난은 양의 바로 옆에 성모가 입고 있는 붉은 옷으로 더욱 강조된다.
이런 주제 해석과 촛불 광선 효과는 라투르보다 한 세대 앞서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카라바조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라투르는 좌우 대칭적인 구도뿐 아니라 면을 넓게 사용해 형태를 단순화시켰다. 결과적으로 화면 속에 매우 고요하고 명상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다.
당시 사람들도 바로 이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루이 13세는 누구보다 라투르 그림을 너무 좋아해, 방에 있던 여러 그림을 다 치우고 그의 그림 한 점만 걸게 했다고 한다. 라투르의 그림이 주는 침묵의 분위기에 필적할 만한 그림은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라투르는 재산을 불리거나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자식이 10명이었지만, 단 세 아이만이 이른 나이에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림을 다시 보면 성 요셉이 눈에 들어온다. 한 손으로 촛불을 들고 다른 손으로 행여 촛불이 바람에 꺼질까 주변을 감싸고 있다. 성모와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들 속에서 아버지 요셉은 언제나 주변적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요셉은 유일한 광원인 촛불을 들고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어 그림을 주도하는 듯하다. 라투르는 요셉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생명을 지키려는 듯 촛불이 꺼지지 않게 노심초사 보호하는 요셉의 모습을 통해 여러 자식을 잃었던 자신의 고통을 치유하려 하진 않았을까?
라투르의 명상적인 그림은 성탄의 의미뿐만 아니라 부모와 자식, 희생과 구원 등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화려하거나 크지 않아도 얼마든지 호소력 있는 힘 있는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제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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