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 ‘검증’ 인사청문회에서 지역구 ‘민원’ 쏟아낸 의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21일 23시 57분


21대 국회 종료를 앞두고 열린 인사청문회가 총선용 지역구 민원 해결의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에게 한 의원은 양식장의 신규면허 발급에 예외조항을 적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장관에 취임하는 순간 해결됐다고 봐도 되느냐”고 반복해 질문했다. 다른 의원은 “장관이 되실 것으로 기대하겠다”는 덕담과 함께 천일염을 정부가 우선 구매해 줄 것을 당부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에게 복숭아 포도 등을 농업보험 대상에 포함해 달라고 요청한 의원도 있었다.

국토교통부 장관에게는 여야 할 것 없이 질의한 의원 대부분이 민원을 꺼냈다. “(지역구를 지나는) 철도 노선이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폐지하고 우회노선을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달라”는 식이다. 어떤 의원은 지역구에 필요한 지하철 연장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상임위원장을 향해 “예비타당성 면제 법안을 전체회의에 상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별도로 의사진행발언 시간을 얻어 한 발언으로, 상임위원장에게서 “인사청문회 의사진행발언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청문회 민원은 후보자 자질 검증이란 기본 역할을 망각한 채 내년 총선에 목을 매면서 벌어진 일이다. 해수부, 기재부 장관 후보자는 민주당이 부적격 판정을 발표한 4명 중 일부다. 당은 자격 없음을 주장하는 동안 일부 의원들은 청문회 통과를 기정사실로 삼으며 민원을 넣은 모양새다. “기재부 장관이 되면 나와 함께 내 지역구 지하철 역사를 방문해 달라”는 요청까지 나왔다. 천일염 민원을 한 의원은 청문회 후 저녁에 “후보자 지명은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비판하는 자료를 냈다.

이런 현상은 과거에도 있었다. 야당으로선 장관에게 민원을 전달할 채널이 부족한 탓일 수 있다. 그러나 전에는 “자질 검증 자리에서 민원 넣는 건 지나치다”며 자성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다. 원내대표가 뒤늦게 질책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요즘엔 그런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 언론이 청문회장의 부적절 민원을 지적해도 그때뿐인 경우가 많다. 의원들은 그걸 활용해 “언론 비판을 감내해 가며 일했다”며 홍보하는 일이 허다했다. 이번에도 또 그럴 것이다.
#장관#인사청문회#지역구#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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