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중국산 저가 범용 반도체를 자국 기업들이 얼마나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지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미국 기술, 장비를 이용한 첨단 반도체의 대중 수출을 차단한 데 이어 저가 물량 공세를 펴는 중국산 반도체 수입까지 통제함으로써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꺾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내년 1월 중 자동차, 항공우주, 방위산업 분야 100곳 이상 자국 기업의 범용 반도체 수급 실태를 파악할 예정이다. 조사를 벌이는 이유는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이 제기하는 국가안보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표적이 중국산 반도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 한국, 대만, 일본, 네덜란드 등 자유진영 국가들과 함께 첨단 반도체 기술·설비의 수출을 막았는데도 중국 측의 타격이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받는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구형 장비, 기술로 세계 반도체 시장의 75%를 차지하는 20나노급 이상 범용 반도체 시장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조사 결과가 우리의 다음 행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발언은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고율관세 등의 무역장벽으로 중국산 반도체 수입을 틀어막을 수 있다는 의미여서다. 문제는 동맹국과의 대중 제재 공조를 강조해 온 미국이 향후 한국 등에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세계 1등이지만, 범용 반도체의 경우 중국산 의존도가 높다. 중국 반도체를 쓰지 못하면 한국이 생산하는 가전제품, 스마트폰, 자동차 등의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중국산 반도체에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만든 반도체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9월 미국 정부가 북미 지역에서 조립된 전기차에만 전액 보조금을 주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시행하면서 한국 자동차 업계는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당했다. 미국 측 의도를 두세 수 뒤까지 읽어내는 정교한 통상외교 전략을 세우지 못하면 언제든 비슷한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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