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그랬듯 ‘경제부총리’를 떠올렸다. 19일 열린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이 던진 질문이었다. 그는 “경제부총리가 할 겁니까. 경제수석이 할 겁니까. 정책실장이 할 겁니까”라고 되물었다. 경제수석에 더해 대통령실에 장관급인 정책실장 자리까지 새로 만들어져 부총리가 컨트롤타워가 되지 못하고 밀린다는 우려가 많다는 것이었다.
‘경제부총리’라는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최 후보자는 “아직 취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드리기는 이르다”고 했다. 대신 ‘사람’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각에서는 제가 내각에서 할 일, 대통령실에서는 또 정책실장이 할 일을 해서 잘 조율해 나가겠다”며 말을 마쳤다. 야당 의원들이 앞서 했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질문들보단 답하기 쉬워 보였는데도 최 후보자의 답변은 조심스러웠다. 대통령의 경제 참모를 공식적으로 사령탑이라고 하는 건 본 적이 없다.
최 후보자에게 맡겨진 역할은 분명 경제 사령탑이다. 대통령이 제출한 최 후보자의 인사청문 요청안에는 “글로벌 복합위기가 지속됨에 따라 안정적인 경제 운용을 위한 경제 사령탑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대상자는 우리나라가 글로벌 중추 국가로 도약하는 데 기여할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갖춘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쓰여 있다.
최 후보자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일화로 넘기기엔 뒷맛이 개운치 않은 건 최근 경제 정책들이 최종 결정되는 과정을 봤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국내 주식 거래로 얻은 이익에 세금을 물리는 기준을 종목당 50억 원으로 높이는 데 부정적이었다. 대통령실발(發)로 기준 완화 보도가 이어졌지만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2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불과 9일 뒤 주식 양도소득세 대주주 기준은 완화됐다.
대통령실이 밀어붙였다고 한다. 대통령실 MZ세대 행정관들이 주식 양도세 폐지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었고 시장 불확실성으로 개인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고위 관계자에게 강하게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받아들여 대통령실이 검토를 거쳐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것이다. 그 말대로라면 경제 원칙은 뒷전으로 두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증시 부양에 나선 셈이다. 지금까진 한 종목의 보유 금액이 10억 원을 넘으면 ‘대주주’로 분류해 세금을 물렸다. 이 때문에 큰손들이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연말에 주식을 대량 매도하면서 주가가 하락하는 일이 반복돼 왔다는 게 개미들의 주장이다.
최 후보자는 한 달 전까지 대통령실 경제수석이었다. ‘천재 관료’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그다. 대통령실과 정부의 역학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가 경제 사령탑을 자임하지 못한 건 그렇기 때문에 더 우려스럽다. 경제 정책을 통솔하고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 ‘팔로어(follower)’가 되겠다는 자세로 읽힌다. 아이러니하게도 최 후보자는 2016년에는 기재부 차관으로 주식 양도세 대주주 기준을 25억 원(코스피 기준)에서 15억 원으로 낮추는 데 앞장섰다. 경제 사령탑인지 팔로어인지는 그의 취임 후 행보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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