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짓고 있는 미국, 대만 반도체 기업 공장들이 예상보다 높은 가격 경쟁력을 갖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 등에 뺏긴 반도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일본 정부가 이 기업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어서다. 한국의 지원책은 상대적으로 크게 열세여서 ‘10년 안에 일본 반도체 산업이 다시 한국을 제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반도체 위탁생산 1위 기업인 대만 TSMC는 내년 2월 준공을 목표로 일본 구마모토현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다. 11조2000억 원의 설비투자 가운데 41%를 일본 정부에서 보조금으로 받는다. ‘10년 이상 공장을 운영하고, 반도체가 부족할 때 일본에 우선 공급한다’는 조건만 충족하면 된다. 이로 인해 일본에서 생산되는 TSMC 시스템반도체의 가격 경쟁력이 10%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미국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도 일본 히로시마현에 차세대 D램 반도체 공장을 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이어 D램 반도체 3위 업체다. 4조3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인데, 일본 정부가 이 중 39%를 보조금으로 주기로 했다. 보조금 효과로 이 공장에서 생산될 D램의 가격 경쟁력이 5∼7%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술 격차가 불과 몇 개월에 불과한 선두권 반도체 기업들 사이에서 5∼10% 가격 경쟁력의 차이는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결정적 요인이다. 그만큼 가격을 낮추거나, 이익을 더 챙길 수 있어서다. 1공장이 가동되지 않았는데도 TSMC가 일본에 2, 3공장 설립을 추진하는 건 이런 계산 때문이다. 파운드리 2위로 TSMC를 추격 중인 삼성전자로선 상황이 불리해졌다.
일본이 자존심을 굽혀가며 외국 기업이 짓는 공장에 자국민의 세금을 쏟아 붓는 건 반도체 부활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위해 8개 일본 기업이 합작해 세운 파운드리 기업 라피더스에도 3조 원의 보조금을 줬고, 추가 지원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가 반도체 기업들의 시설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내놓은 지원책은 법인세를 조금 더 깎아주는 정도다. ‘캐시백’ 형태로 기업에 돌려주는 현금 보조금은 전무하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등 주요국들은 기업이 아닌 정부가 반도체 전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이런 나라와 기업들을 상대로 외롭게 싸우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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