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내년 4·10총선을 100일 남짓 앞두고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를 공식화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19개월 만에 주호영 비대위, 정진석 비대위에 이은 세 번째 비대위 출범이다. 한 비대위원장은 그만큼 혼란에 빠진 당을 추스르고, 대통령의 국정을 뒷받침하는 한편 당이 대통령실에 끌려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
한 위원장은 취임 수락 연설에서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운동권 특권세력 청산을 주장했다. 또 정치인은 국민의 공복이라며 선민후사(先民後私)의 정신을 강조했다. 지역구건, 비례대표건 내년 총선에 불출마할 뜻을 밝히며 “용기 있게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총선 승리를 이끌 비대위원장으로서의 다짐과 포부를 밝혔지만 그의 앞에는 숱한 난제가 놓여 있다.
당장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강행 처리가 예고된 김건희 특검법은 한동훈 정치의 앞날을 내다볼 가늠자다. 대통령실과 여당으로선 난감한 주제이겠지만 찬성 여론이 60%를 넘는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한 위원장은 특검법에 대한 당 방침에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에 한 달 전 공개된 동영상으로 확인된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난맥 해결도 중요한 과제다. 대통령과 어떻게 대화하고 어떤 결론을 내느냐에 한동훈 체제의 운명이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용기 있는 헌신”이 취임식 수사(修辭)에 그쳐선 안 된다.
한 위원장은 대통령 국정에 균형추 기능을 해야 한다. 친윤 주류가 앞장서 만든 김기현 체제는 “윤심(尹心)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라며 당정 일체를 앞세우다가 9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에겐 압도적 정보와 함께 대통령 판단이 옳았다는 달콤한 말이 더 쏠리게 마련이다. 지역구 민심을 늘 접하는 정당의 소금 역할이 필요했지만 김기현 체제는 침묵했다. 그러는 동안 여당에선 실용보다 이념을 앞세웠고, 대야 협치가 사라졌다.
한 위원장은 독특한 위치에 서 있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데다, 첫 과제로 당정 사이의 수평적 관계 설정을 맡았다. 대통령과는 검사 시절부터 오랜 상하 관계다. 낡은 보수 정치를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라는 요구도 받고 있다. 모든 것이 총선 참패 가능성을 직감한 여당의 절박함에서 비롯됐다. 한 위원장은 민심의 바다를 마주하게 됐다. “함께 가면 길이 된다”는 말을 다시 꺼냈다. 그 길이 용산의 뜻을 따르는 것인지, 민심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행동하는 것인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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