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중동의 화약고’에서 빛나는 희망의 불씨
“이 땅이 자녀들 무덤 안 되려면 공존 모색해야”
올해의 끝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을 본다.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석 달째 무력을 주고받으며 2만 구 넘는 시체를 쌓아놓은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 땅, 세계를 분열의 위기로 몰아넣은 지역이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에도 죽음의 무게를 모르는 양쪽 지도자들은 절멸과 박멸만을 말한다. 그래도 낮은 곳에서는 미약하나마 공멸을 막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젊은 음악가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앙상블’은 올해 말에도 연주회를 거르지 않았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화해를 모색하는 시민단체 활동도 이어지고 있다. ‘부모 동아리-가족 포럼’도 그중 하나다. 뉴욕타임스가 이 모임 참가자들의 기막힌 사연을 전했다. 어느 아랍인 부부는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어린 딸을 잃었다. 딸의 아버지는 폭탄을 터뜨려 다 끝내려다 마음을 고쳐먹고 대학원에서 홀로코스트와 히브리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배움 끝에 얻은 깨달음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살인 기계가 아니라 나와 똑같은, 겁먹을 줄도 사과할 줄도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한 이스라엘 여성은 아버지가 하마스 테러범 2명이 휘두른 도끼에 41회 찍혀 숨진 뒤 테러범 집에 불 지르는 상상을 거듭하다 이 모임에 합류했다. “폭력으로 폭력을 끝낼 순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분노를 누르고 화해를 얘기하면 자기편에게서 눈 흘김 당하고 “가만 안 둔다”는 협박도 받는다. 그래도 같이 모이고 양쪽 어린이가 참가하는 캠프를 연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이것 말고 대안이 없다. 이스라엘에도 팔레스타인에도 여기가 내 집이다. 상생하는 법을 알아내지 못하면 이 땅은 우리 아이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모임 참가자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 전쟁을 유대계와 아랍계의 분쟁으로 보는 건 현실을 오독하는 것이라고 한다. 하마스 급습 때 아랍계 자전거 가게 주인은 유대인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를 무료로 나눠줘 대피를 도왔다. 하마스가 이를 알고 그 가게를 불태우자 이번엔 이스라엘 사람들이 돈을 모아 보은했다. 이스라엘 병원에서 일하는 젊은 의사의 절반은 아랍계인데 유대인과 아랍인 가리지 않고 환자를 본다. 아랍인이 유대인을 하마스로부터 숨겨주고, 그 아랍인은 이스라엘군에 죽을 뻔하다 유대인의 도움으로 살고, 그 유대인은 아랍인 덕에 목숨을 건진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프리드먼은 “이 전쟁은 유대인과 아랍인의 대결이 아니라 빛과 어둠의 싸움”이라는 현지인의 말을 전하며 피아 구분이 어려운 만화경 같은 현실에서 공존의 가능성을 보고 실현 불가능한 꿈을 꾸게 된다고 썼다.
‘하나의 땅, 두 개의 민족’이라는 100년 분쟁을 이어온 이들에게 공존의 해법 찾기는 ‘파도를 마주 보고 수영하기’이고 ‘하루하루 좌절할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도 1973년 아랍-이스라엘 간 욤 키푸르 전쟁의 어둠을 뚫고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평화협정의 새벽이, 1987년 반(反)이스라엘 저항운동인 인티파다 이후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의 새벽이 밝았다. 1999년 팔레스타인계 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설한 유대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포디엄에 설 수 없는 병중에도 “화나고 절망에 빠질 순 있지만 야만적 폭력에 굴복해 평화를 내주진 말자”고 호소했다. 폭력에 무릎 꿇지 않는 용기 있는 시민들이 내일의 새벽은 또 다른 어둠을 낳을 뿐이라는 패배주의에서 벗어나기를, 불의를 불의로 갚는 피의 보복을 끝내기를, 2차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분쟁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희망을 주기를 멀리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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